몸이 배신해도 춤은 남는다 — Lucy Mae Freeman의 이야기
항암제가 몸속을 훑고 지나간 날, 그녀는 방 안에서 혼자 춤을 췄습니다. 정확히는 — 기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 너무 지쳐서 실제로는 머릿속에서만 춤이 펼쳐지는 날도 있었습니다. 무대도 없고, 관객도 없고, 반주도 없었습니다. 그 방에는 오직 피로와, 그것을 뚫고 나오려는 어떤 충동만이 있었습니다. 스물일곱 살의 댄서 Lucy Mae Freeman이 유방암 진단을 받은 뒤 보낸 시간의 한 장면입니다.
무대 위의 삶, 그리고 갑작스러운 전환

Freeman은 런던을 무대로 댄서이자 안무가, 교사로 활동해온 사람입니다. 그녀 자신의 말처럼, 춤은 “삶의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댄스 강사 일을 시작한 지 4주 만에 진단을 받고 영국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6차례의 항암 화학요법, 수십 번의 혈액검사와 스캔, 스테로이드 투여, 난소 억제 주사, 종양절제 수술과 림프절 제거, 20회의 방사선 치료, 그리고 1년간의 표적치료. 이 목록을 읽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그것을 몸으로 견뎌낸 것이 그녀입니다.
세간에 알려진 이야기의 표면은 이렇습니다. 젊고 패기 있는 댄서가 병마에 맞섰고, 그 싸움 끝에 무대로 돌아왔다. 고난을 이겨낸 복귀 서사. 우리가 익숙하게 소비하는 ‘재기의 드라마’입니다. 언론이 이런 이야기를 다룰 때, 핵심은 으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냈다”는 문장에 모입니다. 그리고 독자는 그 문장에서 안도하고, 페이지를 넘깁니다.
그런데 Freeman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표면 아래에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치료가 바꿔놓은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한 것

치료는 그녀의 몸을 바꿔놓았습니다. 지속적인 피로, 인지 기능 저하, 체중 변화, 수술로 인한 움직임의 변형. 기사에 그녀가 직접 적고 있습니다. “움직임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전의 춤이 가능했던 방식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아졌다는 뜻입니다. 그 사실이 가져온 공포를 그녀는 이렇게 씁니다. “처음으로, 내 미래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여기서 보통의 서사라면, 의지로 회복하여 이전의 자리를 되찾는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그런데 Freeman이 실제로 발견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항암 치료로 몸이 무너지던 날, 방 안에서 혼자 P!nk의 노래를 들으며 — 실제로 몸이 움직이든, 머릿속에서만 움직이든 — 춤을 이어가던 순간, 그녀가 깨달은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춤이 반드시 거창한 무언가일 필요는 없다. 그것이 진짜로 무엇에 관한 것인지를 잊고 있었다. 기쁨. 공동체. 자유. 자신감.”
저도 오랫동안 ‘구조’가 먼저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술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구조가 무너진 자리에서 오히려 핵심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Freeman의 경우가 꼭 그랬습니다. 기술적으로 완성된 몸, 무대, 조명, 관객 — 그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 춤 자체가 남았습니다. 그것이 ‘대표작 속 숨은 이야기’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작품의 화려한 외형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한 가장 깊은 층위 말입니다.
춤을 도구로 삼은 방식, 그리고 그 의미

치료를 마친 뒤, Freeman은 세 주 만에 수업 현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DANCE · LIVE · CHECK YOUR CHEST’라는 유방암 인식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춤을 매개로,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검진하도록 독려하는 플래시몹 형태의 캠페인입니다. 암 생존자, 창작자, 암으로 삶이 바뀐 이들이 모인 커뮤니티로 성장했다고 그녀는 씁니다.
이 캠페인에서 춤은 미학적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기술을 전시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두려움을 격려로 전환하는 장치로 쓰이고 있습니다. Freeman이 직접 씁니다. “유방암은 무섭습니다. 진단 전 저는 그것을 생각하는 것을 피했습니다. 그 두려움을 어떻게 하면 훨씬 더 용기 있는 무언가로 바꿀 수 있을까요?” 그 물음의 답으로 그녀가 선택한 것이 춤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캠페인이 항암 치료 중에 이미 구상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병상에서, 또는 치료실에서, 그녀는 이미 다음을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공학적인 시각으로 보면, 이건 설계와 시공이 동시에 진행된 경우입니다. 무너지는 구조 안에서 다음 구조를 그리는 일.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녀의 이야기에서 제가 오래 머문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가장 힘든 부분이 지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안도했다고 씁니다. 그리고 세 주 뒤에 수업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직후에 나오는 문장이 이렇습니다. “항암이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수술이, 방사선이, 표적치료가 모두 뒤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모든 과정을 “내 춤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 된 무언가 특별한 것의 시작”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반전입니다. 우리가 통상 ‘대표작’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대 위에 올라간 작품입니다. 기록된 공연, 수상 이력, 커리어의 정점. 그런데 Freeman의 경우, 진짜 대표작이 무엇인지 한번쯤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항암제가 몸을 파고드는 날 혼자 방 안에서 췄던 춤인지, 아니면 두려움을 걷어내기 위해 설계한 플래시몹인지. 어느 쪽이든, 그 안에는 기술보다 훨씬 오래된 무언가가 들어 있습니다.
몸이 할 수 없는 것이 생겼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왜 해왔는지를 묻게 됩니다. Freeman의 이야기는, 그 물음에 솔직하게 답한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방향은, 무대로의 복귀가 아니라 춤의 의미로의 귀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