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피어난 꽃 — 재스민 바디의 무명 시절

애틀랜타를 떠나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아마 도시의 눈부신 햇빛보다 먼저 자신의 초라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2013년, 재스민 “JB” 바디는 꿈이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짐을 싸 서쪽으로 향했습니다. 춤으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구체적이지만 아직 형태가 없는 그 꿈 하나를 들고요. 에이전트도 생겼고, 동료들도 있었고, 도시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전화는 좀처럼 오지 않았습니다.

느리게 흘러간 시간, 그리고 에이전트 명단의 한 줄

바디 자신이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더뎠다”고.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자신은 “좀 늦게 핀 편”이었다고. 이 두 문장 안에 얼마나 많은 것이 압축되어 있는지,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것입니다.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오래 멈췄습니다.

로스앤젤레스의 상업 무용 씬은 냉혹합니다. 에이전트에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보증하지만, 그것이 곧 일감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디션 공고를 보고, 준비하고, 떨어지고, 다시 준비하는 일상이 반복됩니다. 그 사이 통장 잔고는 줄고, 주변 친구들의 커리어는 조금씩 가시화되기 시작합니다. 내가 뒤처지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다른 속도로 가고 있는 건지, 그 경계를 스스로 판단하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그 시절 바디에게 무용수의 삶이란 아마도 기다림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에이전트 명단의 한 줄로 존재하는 것, 오디션장에서 번호표를 받아 드는 것, 그리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 뭔가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아직 때가 오지 않은 것인지 — 그 물음에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 시간들이 이어졌을 것입니다.

비욘세의 무대에서 비로소 들린 소리

전환점은 조용히 찾아왔습니다. 2013년 비욘세의 슈퍼볼 공연 무대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2016년에는 포메이션 투어의 어시스턴트 안무가이자 스탠드인으로 합류합니다. 이 두 경험이 바디에게 무언가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바디는 그 시절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공연을 만들어가는 과정, 아티스트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프로덕션을 구성하는 일들이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무용수로서 무대에 서는 것이 아니라, 그 무대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쪽이 자신의 자리라는 감각이 그때 처음 또렷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전환점이었을 것입니다. 늦게 핀다는 것은 단순히 기회가 늦게 온다는 의미만이 아닙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에 서야 하는지를 깨닫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바디는 무용수로 출발했지만, 정작 자신이 빛나는 자리는 안무가의 자리였습니다. 그것을 알아채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공학을 오래 가르친 사람으로서, 저는 이런 과정을 보면 종종 시스템 설계의 시행착오를 떠올립니다. 어떤 구조가 실제로 하중을 받아보기 전까지는 그 약점이 드러나지 않듯, 사람도 여러 역할을 실제로 거쳐보기 전에는 자신이 어디에 맞는 부품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바디의 늦은 개화는 그 탐색 과정의 정직한 결과였습니다.

위대함은 여덟 박자에서 오지 않는다

지금의 바디는 비욘세, 퍼렐, 메건 디 스탤리언, 그리고 사브리나 카펜터에 이르기까지 정상급 아티스트들과 함께 일합니다. 사브리나 카펜터의 쇼트 앤 스위트 투어의 안무를 맡았고, 올해 코첼라 공연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바디는 코첼라를 두고 “투어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고 했고, 그것이 “자신에게 중요한 이정표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바디가 일하는 방식을 보면, 무명 시절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그녀는 새 아티스트와 일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일대일로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고 합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 음악을 들을 때 무엇을 느낍니까, 이 가사를 쓸 때 어떤 감정이었습니까”를 묻는 것입니다. 화려한 안무 기술보다 아티스트가 스스로를 자유롭게 느끼는 것이 먼저라는 믿음, 그것이 그녀의 작업 방식의 핵심입니다.

바디는 말합니다. “위대함은 여덟 박자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느끼는 자유로움과 기꺼이 드러내려는 의지에서 옵니다.” 이 말은 단순한 철학이 아닙니다. 오디션장을 오가며, 전화를 기다리며, 스스로가 어디에 속하는지를 찾아 헤매던 시절을 통과해 도달한 문장입니다. 그 시절이 없었다면 이 말은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디가 아티스트들에게 “당신이 이 노래에서 무엇을 느끼느냐”를 묻는 방식은, 어쩌면 무명 시절 자기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의 반향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왜 춤을 추는가, 나는 이 일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디에 있을 때 가장 나다운가. 그 질문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 그녀가 아티스트들을 열어가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무명의 시간이 길었던 사람은 종종 그 시간을 수치스럽게 여기거나 서둘러 지우려 합니다. 하지만 바디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느린 시간이 오히려 단단한 기반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한 시간, 다양한 역할을 몸으로 겪어가며 자신의 자리를 좁혀가는 시간 — 그것이 낭비처럼 보여도 실은 가장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지금 이 순간의 느림이 실패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가장 긴 우회로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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