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팅이 노래한 것은 아버지의 삶이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배가 떠납니다. 기막힌 영상 투영 기술이 만들어낸 그 장면 앞에서, 런던 드루리레인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이 조용히 숨을 참는다고 합니다. 최근 공연 리뷰가 전하는 장면입니다. 객석에 앉은 사람들 대부분은 아마 이 뮤지컬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왔겠지요. 하지만 그 이름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은, 아는 것과 실감하는 것이 여전히 다릅니다.
스팅. 록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가 워낙 단단하게 붙어 있어서, 그가 뮤지컬 무대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지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런데 이 낯섦이야말로 오늘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지점입니다.
아버지의 직업, 아들의 노래

《더 라스트 십(The Last Ship)》은 스팅이 직접 쓰고 작곡한 뮤지컬입니다. 지금 영국 런던 Theatre Royal, Drury Lane의 커다란 무대를 채우고 있습니다. 배경은 1986년, 잉글랜드 북동부의 타인사이드(Tyneside). 조선소 폐쇄를 앞둔 노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단지 소재 때문이 아닙니다. 스팅의 아버지가 엔지니어였고,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는 조선공, 북해 수로 안내인, 선장이었다고 기사는 전합니다. 그가 자란 마을에 Swan Hunter 조선소가 있었고, 그 조선소의 흥망이 곧 그 마을의 흥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뮤지컬은 스팅이 다른 장르를 ‘탐험’하러 간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늘 갖고 있었으나 록 음악의 언어로는 충분히 말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꺼내놓기 위해, 뮤지컬이라는 형식을 빌려온 것입니다. 리뷰는 그의 1991년 앨범 《The Soul Cages》가 이미 이 작품의 뿌리였다고 알려줍니다. 조선소의 풍경, 산업의 쇠락, 바다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 그 앨범에서 싹텄던 것들이 수십 년을 거쳐 무대 위에 닻을 내린 셈입니다.
록 스타가 뮤지컬을 쓸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장르를 넘는다는 것은 흔히 용기의 문제처럼 이야기됩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는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록 음악과 뮤지컬은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록은 반복과 강도(intensity)로 감정을 쌓습니다. 뮤지컬은 서사의 흐름 속에서 노래가 인물의 내면 변화를 대신합니다. 배우가 말을 멈추고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지금부터 이 인물의 언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것이 터져 나온다”는 신호입니다.
스팅이 선택한 방식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조선소 폐쇄 앞에서, 노동자들이 마지막 배 한 척을 스스로 만들어내기로 결의하는 장면. 그 결의를 대사만으로 전달했다면 아마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래로 쌓아 올린 그 순간은 사람들을 울립니다. 리뷰어는 “스팅의 멜로디는 극장을 나오면서도 흥얼거릴 수 있다”고 썼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칭찬이 아닙니다. 뮤지컬에서 멜로디가 기억에 남는다는 것은, 그 노래가 인물의 감정과 제대로 합쳐졌다는 증거입니다.
물론 리뷰는 가사에 대해 아쉬움도 담았습니다. 서사를 설명하는 데 머물렀다는 것, 시적인 밀도가 아쉽다는 것. 이 지점이 흥미롭습니다. 록 음악에서 스팅의 가사는 문학성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뮤지컬이라는 형식 안에서는 그 문학성이 오히려 서사에 눌린 것처럼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장르를 바꾸면 강점의 형태도 바뀝니다. 한 맥락에서의 미덕이 다른 맥락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조율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장르 이동의 진짜 어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래된 기억이 다른 형식 안에서 완성될 때

저도 오래전부터 구조와 감정이 만나는 지점을 좋아해왔는데, 스팅의 이 작업을 들여다보면 그 두 가지가 어떻게 협상하는지가 보입니다. 뮤지컬의 서사 구조는 엄격합니다. 인물이 어디에서 출발해서 어디에 도달하는지, 그 여정이 선명해야 합니다. 그 안에 록 음악의 날것 같은 감정을 얼마나, 어떻게 녹일 것인가. 그 조율의 흔적이 이 작품 곳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스팅은 이 뮤지컬에서 직접 주연을 맡아 조선소 십장 재키 화이트 역을 연기합니다. 리뷰어는 그의 목소리와 존재감이 여전히 강하다고 썼습니다. 여기서 또 한 번 장르 이동이 일어납니다. 음악가에서 배우로. 그가 연기한 것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그 인물의 체온은 실제 아버지에게서 빌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것을 느낍니다. 런던의 회의적인 관객들이 조선소 노동자들의 삶 앞에서 조용해졌다고, 리뷰는 전합니다.
장르가 달라도 사람의 마음에 닿는 방식은 결국 하나인지도 모릅니다. 진심으로 고여 있던 것을 꺼내는 것. 스팅이 록 음악으로는 미처 다 말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세계를, 뮤지컬이라는 다른 언어로 마침내 완성했다면 — 그것이야말로 한 예술가가 다른 장르에 남길 수 있는 가장 솔직한 흔적일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형식에 오래 머물다 보면, 그 형식이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조금씩 쌓입니다. 그것이 쌓여 결국 다른 언어를 찾아 나서게 만들 때, 비로소 한 예술가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