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의 소리를 팔다, 니겔 케네디 비올라가 남긴 것

경매장의 조명은 대개 조금 낮습니다. 무대 위에서는 그렇게 환하던 악기도 번호표를 달고 테이블 위에 놓이면 갑자기 조용해집니다. 이번에 그런 자리에 놓인 것은 비올라 한 대였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니겔 케네디가 팔기로 한 악기이고, 경매회사 Amati에서 3,792파운드, 구매자 수수료를 포함한 금액에 낙찰되었다는 소식이 Slippedisc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기사를 읽다 보면 가격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대목이 있습니다. 케네디는 자신이 팔려는 비올라를 스스로 헐뜯으며 소개했다고 합니다. 기사는 그 악기의 소리를 “농장의 온갖 소리 같은 잡음과 거칠게 으르렁거리는 공격적인 울림”이라고 표현했고, 비브라토는 “2초마다 어김없이 돌아가는 비브라토 주기”라며 비꼬았다고 옮깁니다. 파는 사람이 제 물건의 흠을 과장해서 말하는 장면은 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말투 속에는 이 악기와 오랫동안 씨름해 온 사람의 애증이 묻어 있습니다.

이 장면을 오래 들여다보면 한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악기는 완성된 물건일까요, 아니면 연주자와 함께 아직 완성되어 가는 도구일까요. 비올라라는 악기는 바이올린보다 크고 낮은 음역을 맡지만, 바이올린에 비해 독주 레퍼토리가 넉넉하지 않았던 탓에 오랫동안 연주자들이 스스로 길을 내야 했던 악기이기도 합니다. 그런 악기를 손에 쥔 사람은 소리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조율하고 덜어내고 다시 쌓아야 합니다.

창작의 제약, 악기가 그를 어디로 데려갔는가

Nigel Kennedy
출처: 위키백과 – Nigel Kennedy (이미지: 위키미디어 공용)

케네디라는 이름은 클래식 음악계 바깥에서도 자주 오르내렸습니다. 기사 속에서 그는 “특이한 바이올리니스트(quirky violinist)”로 묘사됩니다. 이 짧은 수식어 안에는 전통적인 연주 관습과 거리를 두며 자신만의 소리를 찾아온 이력이 함축되어 있는 듯합니다. 그가 밝힌 적도 있다는 이야기처럼, 그는 클래식과 대중음악, 재즈와 같은 여러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었다는 평을 받아 왔습니다. 물론 이것은 기사 밖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이므로, 구체적인 활동 기록은 원출처를 따로 확인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경계를 넘는 예술가에게 가장 큰 제약은 대개 청중의 기대입니다. 정통 클래식 연주자에게는 “이렇게 연주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기준이 있고, 대중 무대에서는 “이 정도는 쉬워야 한다”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연주자는 자기 소리를 지키면서도 청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합니다. 케네디가 악기를 두고 농장의 소리라고 표현한 것은,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 거칠고 살아 있는 음색과 전통적 기준이 요구하는 매끈함 사이의 거리를 농담 속에 담아 둔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공학적인 관찰을 하나 덧붙여 보겠습니다. 비브라토는 음정을 주기적으로 흔드는 진동입니다. 주기가 일정하면 소리는 안정되어 들리지만, 지나치게 일정하면 기계적인 느낌을 줍니다. 기사가 인용한 “2초마다 어김없이 돌아가는 비브라토”라는 말은 바로 그 기계성에 대한 지적입니다. 연주자가 자기 소리를 찾는다는 것은 이 주기를 얼마나 흔들고 어긋나게 할지 결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디테일, 소리를 깎아내는 손의 기록

Nigel Kennedy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 Nigel Kennedy (라이선스는 링크 참조)

창작 과정의 디테일은 대개 무대 밖에서 일어납니다. 연습실에서 같은 프레이즈를 수십 번 반복하고, 활의 압력을 조금씩 바꾸고, 왼손의 떨림을 귀로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기사에는 그런 연습의 기록이 나오지 않지만, 케네디가 비올라의 소리를 두고 “잡음”과 “공격성”이라는 단어를 고른 순간, 그는 이미 그 소리를 아주 세밀하게 듣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충 들으면 잡음일 뿐이니까요.

악기를 판다는 행위도 하나의 창작 과정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연주자는 어떤 악기로 어떤 소리를 만들었는지를 되돌아보며 악기와의 관계를 정리합니다. 자신을 가장 강하게 밀어붙였던 악기, 혹은 가장 많이 실망시켰던 악기를 떠나보내는 순간은 한 시기의 마감이기도 합니다. 케네디가 악기를 일부러 깎아내리며 소개했다는 사실은, 그 악기와의 관계를 웃음으로 정리하려는 방식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다만 이 이야기를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경매의 낙찰가는 악기의 역사, 상태, 제작 연도, 시장의 수요 같은 여러 요인이 얽힌 결과이고, 예술가의 고뇌가 가격에 그대로 반영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3,792파운드라는 숫자는 조용히 놓아두고, 대신 연주자가 그 악기에서 무엇을 들었는지를 찾아보는 편이 더 의미 있어 보입니다.

오늘의 독자에게, 소리를 다시 듣는 일

Nigel Kennedy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 Nigel Kennedy (라이선스는 링크 참조)

오늘날 우리는 완성된 결과물을 빠르게 소비하는 데 익숙합니다. 음반 한 장, 공연 한 편을 짧은 시간에 넘겨 보고 평가하곤 합니다. 그러나 케네디의 비올라 이야기는 결과물 뒤에 놓인 수많은 불완전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악기의 잡음, 비브라토의 기계적인 주기, 연주자의 망설임이 모두 창작의 재료였던 셈입니다.

이 기사를 읽고 나서 음악을 다시 들어 보시면 어떨까요. 완벽하게 다듬어진 소리보다, 어딘가 거칠고 흔들리는 소리 속에서 연주자가 무엇과 씨름했는지 한번 귀 기울여 보셨으면 합니다. 예술은 결국 정교한 구조와 깊은 고뇌가 만나는 자리에서 태어나고, 그 자리는 가장 불편해 보이는 소리 속에 숨어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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