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악장, 살아남은 자의 음악
수용소 안에 음악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저녁마다, 죄수들이 노동을 위해 대문을 나서고 돌아올 때, 오케스트라는 연주했습니다. 그 음악을 지휘한 사람은 죄수였습니다. 바이올린을 켜고 악보를 읽고 단원들을 다독이며, 그는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음악으로.
시몬 락스(Szymon Laks)라는 이름을 오늘 처음 들으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저도 솔직히 말하면 이번 기사를 통해 비로소 제대로 마주한 이름입니다. 독일 언론이 그의 삶을 조명하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그의 음악이 이제서야 발굴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 아우슈비츠 죄수 오케스트라의 악장(Kapellmeister). 그리고 전쟁 후 파리로 돌아가 조용히 살다 간 사람.
억압자를 위해 연주해야 했던 자리

락스가 아우슈비츠에서 맡은 역할은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죄수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는데, 그 오케스트라는 억압자들을 위해 연주하도록 강요받은 집단이었습니다. 기사는 이를 “made to play for the oppressors”라고 표현합니다. 억압자들의 명령에 따라 악기를 들고, 그들이 원하는 자리에서, 그들이 원하는 시간에 연주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저는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음악이 존엄을 지키는 행위였는지, 아니면 존엄을 저당 잡힌 행위였는지. 아마 락스 본인도 그 경계 어딘가에서 매일 흔들렸을 것입니다. 악장이라는 위치는 다른 단원들보다 조금 더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여주었겠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것을 감당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단원 한 명 한 명의 상태를 살피고, 음악의 수준을 유지하면서, 그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매 순간 의식해야 하는 자리.
음악이라는 구조물을 유지하는 일이 공학적 설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만, 락스가 선 자리는 설계도도 없고 보수도 없는 자리였습니다. 그저 살아내는 것, 그것 하나가 목적이었을 것입니다.
전쟁이 끝난 뒤, 파리에서의 침묵
전쟁이 끝나고 락스는 파리로 돌아갔습니다. 기사는 그것만 전합니다. 파리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작곡했는지, 그가 아우슈비츠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지는 이 기사에 담겨 있지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의 음악이 오랫동안 망각 속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기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retrieved from oblivion”, 망각으로부터 되찾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겪은 예술가들이 이후의 삶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제각각입니다. 어떤 이는 그 경험을 작품의 전면에 내세웠고, 어떤 이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습니다. 락스가 파리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곡을 이어갔는지, 아우슈비츠의 기억이 그의 음악 언어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작곡을 계속했고, 그 작품들이 남아 있어 지금 발굴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답처럼 느껴집니다.
살아남은 자는 무언가를 남깁니다. 그것이 증언이든 음악이든, 남겨진 것들은 시간이 지나 뒤늦게 빛을 받기도 합니다. 락스의 경우가 꼭 그렇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독일 언론이 그의 이름을 불러냈고, 사람들이 그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망각에서 건져진다는 것의 의미
훌륭한 예술은 결국 정교한 구조와 깊은 고뇌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락스의 삶은 그 두 가지가 가장 극단적인 조건 아래서 부딪힌 경우입니다. 억압자 앞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일은 기술과 절제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동시에 그 상황 자체가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고뇌의 연속이었을 테고요.
그런데 그 음악이 오랫동안 잊혀졌다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씁쓸합니다. 그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하더라도, 그가 작곡가로서 남긴 작품들은 별개로 취급받아온 셈입니다. 삶의 극적인 서사가 음악 자체의 가치를 가리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있습니다. 혹은 반대로, 음악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 음악을 세상에 알릴 맥락이나 기회를 갖지 못하면 사라지기도 합니다.
락스의 음악이 지금 발굴되고 있다는 소식은 그래서 단순한 뒤늦은 조명 이상으로 느껴집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비로소 온전히 보려는 시도입니다. 아우슈비츠 악장이라는 역할이 아니라,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시몬 락스라는 사람을 보는 것. 그 사람이 남긴 음표들을 듣는 것.
결정적인 사건은 한 사람의 삶을 규정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이후를 가려버리기도 합니다. 락스에게 아우슈비츠는 분명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그 이후의 시간이 빚어낸 음악들이 지금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는 당사자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비로소 제 목소리를 얻기도 한다는 것, 그것이 오늘 락스의 이름 앞에서 가장 오래 머물게 되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