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의 방해꾼, 후대가 발견한 천재 — 안톤 브루크너의 재평가

1891년 빈의 음악홀.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9번 초연이 끝났을 때, 청중의 반응은 침묵에 가까웠습니다. 몇 사람은 박수를 쳤지만 대부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일어섰습니다. 당시 빈의 음악 평론가들은 한입같이 이 곡을 깎아내렸습니다. ‘산만하고 비대하다’, ‘구조가 없다’, ‘낭만주의의 과장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괴작’이라는 평가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미 60대 중반이던 브루크너는 이러한 혹평에 익숙했습니다만, 그것이 편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당대 비엔나가 보기 거부한 것

안톤 브루크너
출처: 위키백과 – Anton Bruckner

브루크너가 빈 음악계에서 마주친 것은 단순한 비평이 아니라 구조적인 거부감이었습니다. 1870년대 이후 빈은 음악적 진보를 가늠하는 척도로 쇠락해가던 낭만주의를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바그너의 영향력은 독일에서 절정이었고, 브람스는 고전 음악의 형식 안에서 현대성을 모색하는 ‘진보적’인 선택으로 평가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은 애매한 존재였습니다. 형식상으로는 전통적인 교향곡의 틀을 따르면서도, 내용상으로는 바그너의 영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브루크너의 오케스트레이션을 들어보면 그 이유가 선명해집니다. 그는 현악기 합주를 거대한 울림의 기둥으로 만들었고, 금관악기들을 종교음악의 그것처럼 숭고하게 배치했습니다. 이는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전통에서 볼 수 있는 ‘진행’이 아니라 ‘회귀’처럼 느껴졌습니다. 빈의 평론가들과 음악 애호가들은 이를 ‘구식’이라고 판단했고, 브루크너를 ‘시대에 뒤떨어진 종파음악가’로 낙인찍기 시작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브루크너 자신이 이러한 혹평에 일부 동조했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쓴 교향곡들을 계속 수정하고, 다른 악곡들의 편집본을 손으로 직접 정정하면서, 마치 자신의 음악이 ‘부족하다’는 판정에 스스로 합의하려는 듯 행동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브루크너의 원본 악보는 여러 버전으로 흩어졌고, 이것이 후대 음악학자들에게는 또 다른 혼란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악보 뒤에 숨겨진 구조

안톤 브루크너
출처: 위키백과 – 안톤 브루크너

브루크너의 재평가는 그의 악보를 다시 읽으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세기 초반 음악학자들은 당대의 편집본이나 비평과는 상관없이, 브루크너가 각 교향곡에 적용한 음악적 논리 자체를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놀라웠습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은 예상과 달리 매우 정교한 건축학적 원리에 따라 조직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전형적인 구조는 이러하습니다. 먼저 주제 제시에서 바그너처럼 반복과 변형을 통해 관객을 단계적으로 몰입시킵니다. 그 다음 발전부에서는 이 주제들 사이의 숨겨진 관계를 밝혀내며, 마지막 재현부에서는 처음 제시된 것보다 훨씬 더 심화된 형태의 주제가 나타납니다. 이는 베토벤의 교향곡 구조와 놀랍도록 유사하면서도, 현대적 화성 감각으로 재해석된 것이었습니다. 즉, 브루크너의 음악이 ‘산만’해 보인 이유는 그것이 당대 청취자들이 익숙한 음악 형식의 속도보다 훨씬 느렸기 때문입니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에 이루어진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녹음들은 이러한 재평가를 결정적으로 강화했습니다. 특히 토스카니니와 카라얀 같은 거장 지휘자들이 브루크너를 지휘하면서, 그의 음악이 단순히 듣기 좋은 음악이 아니라 음악 자체의 ‘사유’ 그 자체임을 증명했습니다. 전후 유럽의 음악계는 서서히 브루크너를 베토벤의 진정한 후계자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습니다.

곡선의 승리, 그리고 지금

안톤 브루크너
출처: 위키백과 – 안톤 브루크너

오래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학생들이 낯선 것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관찰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브루크너의 사례는 그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히 ‘음악의 재평가’가 아니라, 우리가 예술을 판단하는 방식 자체의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당대 빈은 브루크너를 거부했던 이유가 분명했습니다. 그의 음악은 진보의 방향과 맞지 않았고, 현시대의 미학적 판단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실수했습니다. ‘진보’라고 불리는 것이 모든 시대에 음악 본질의 진정한 진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은 곡선을 따릅니다. 빠르게 상승하지 않고, 때로는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옵니다. 같은 지점을 여러 번 돌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그려진 곡선 전체를 뒤로 물러서서 보면, 그것은 사실 상승의 또 다른 형태였습니다.

오늘날 브루크너는 고전주의 이후 서양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교향곡 전곡은 여러 거장 지휘자들에 의해 완벽하게 녹음되었고, 콘서트홀에서는 정기적으로 그의 곡들이 올라옵니다. 음악 교육기관에서는 학생들에게 브루크너 악보를 분석하도록 권장합니다. 이것은 역사가 결국 진실을 찾아낸다는 낭만적인 이야기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더 정확하게는 우리의 청각이 충분히 깊어져야 음악이 무엇을 말하는지 들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당대의 오해는 사실 우리 자신의 귀가 그 음악을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말해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