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장 바닥에서 시작된 이야기 — 샤멜 핏츠가 아닌, 캔디 통의 무명 시절

오디션이 끝난 뒤의 복도는 언제나 조용합니다. 방금 전까지 음악이 울리고 심사위원의 눈길이 쏟아졌던 공간에서 나온 뒤, 혼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그 몇 초. 무슨 생각을 할까요. 캔디 통은 그 순간을 한 번이 아니라 수도 없이 겪었습니다. 오디션장마다 돌아오는 말은 비슷했습니다. “키가 너무 커요.” “뼈대가 굵어요.” 발레의 세계에서 이 말들은 정중한 거절이 아니라, 당신은 이 무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선고에 가까웠습니다.

Dance Spirit에 실린 기사에서 캔디 통은 과거의 자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 편지 안에는 화려한 커리어의 연대기보다, 무너질 뻔했던 시간들이 먼저 나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샌프란시스코 발레 스쿨과 잉글리시 내셔널 발레 스쿨을 거쳤고, UC 어바인에서 무용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받은 사람. 그 이력만 보면 탄탄한 정도를 다 거쳐온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 이력을 쌓는 과정은 거절의 연속이었습니다.

무대 바깥에서 버텨낸 시간

Candy Tong (캔디 통)
출처: 위키백과 – Deuk deuk tong

발레는 유독 몸의 규격을 따집니다. 어떤 예술 분야도 신체 조건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지만, 발레는 그 기준이 유독 좁고 명확하며 오랫동안 좀처럼 바뀌지 않았습니다. 캔디 통이 오디션을 다니던 시절, 그 기준의 벽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겁니다. “너무 크다”는 말, “뼈대가 굵다”는 말. 이 말들이 반복될수록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가 어떻게 되는지, 당사자가 아니라면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기사에서 그는 이렇게 씁니다. “그 말들이 당신의 자신감을 잠식하도록 내버려 두지 마세요.” 이 한 문장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것이 훈계가 아니라 자신이 실제로 그 잠식을 경험했다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캔디 통은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무용계 한복판에서,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계속 들으며 버텨야 했습니다. 그 고립감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저도 오래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이런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잘못된 분야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분야의 좁은 규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캔디 통의 경우, 그 규격은 몸의 크기였고, 그것은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버틴 것이 아니라, 다르게 읽기 시작한 것

Candy Tong (캔디 통)
출처: 위키백과 – Candy Tong (캔디 통)

전환점이라는 말은 종종 劇的인 사건처럼 묘사됩니다. 하지만 캔디 통의 경우, 그것은 어떤 결정적인 오디션 합격이나 특별한 조언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편지에서 이렇게 씁니다. “언젠가 당신은 그 특징들이 오히려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인식의 전환이 정확히 언제 일어났는지 기사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마 한 순간이 아니라, 수년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진 변화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증거가 바로 Complexions Contemporary Ballet입니다. 캔디 통은 2018년부터 2024년까지 이 컨템포러리 발레단에서 활동했습니다. 기사는 그의 춤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확장된 움직임과 아름답고 긴 선이 무대를 가득 채웠다.” 발레 오디션에서 불리한 조건으로 지목받던 바로 그것들 — 큰 키, 굵은 뼈대, 긴 팔다리 — 이 컨템포러리 무대에서는 무대를 가득 채우는 선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위로의 수사가 아닙니다. 구조적으로 보면, 클래식 발레는 특정 신체 비율을 전제로 설계된 움직임의 체계입니다. 그 체계 안에서 ‘맞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은 신체가, 다른 체계 안에서는 오히려 이상적인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캔디 통의 이야기는 그 체계의 차이를 몸으로 경험한 기록입니다. 문제는 그가 틀린 것이 아니라, 처음에 들어간 문이 그에게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Complexions는 1994년에 설립된 단체이고, 캔디 통은 UC 어바인 졸업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곳에 합류합니다. 그 사이에 어떤 오디션들이 있었는지, 어떤 거절들이 있었는지, 기사는 모두 담지 않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나는 이 틀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는 문장은, 그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거절이 쌓인 자리에서 발견한 것

Candy Tong (캔디 통)
출처: 위키백과 – Candy Tong (캔디 통)

캔디 통은 2024년 Complexions를 떠납니다. 그리고 거의 곧바로, 전혀 다른 세계로 걸어 들어갑니다. 아이슬란드 출신 싱어송라이터 로페이(Laufey)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고, 인연이 이어져 그의 퍼스널 트레이너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로페이의 월드 투어에 동행하며, 또 다른 셀러브리티들과도 협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5년에는 자신의 필라테스·근력 훈련 프로그램인 Candy Tong Movement를 창업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제2의 커리어’가 아닙니다. 기사에서 그는 이렇게 씁니다. “나는 당신이 그냥 댄서라고만 생각해왔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당신은 훨씬 더 많은 것이에요.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재능들이 있어요.” 이 말은 무대에서 내려온 뒤에야 가능한 말입니다. 오랫동안 ‘발레리나’라는 단 하나의 정체성으로 자신을 규정하고, 그 정체성에서 계속 밀려나는 경험을 했기에 나올 수 있는 말입니다.

발레 오디션장에서 “당신은 이 규격에 맞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그 규격 자체를 바꾸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자신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 쌓아갔습니다. 컨템포러리 무용, 모델링, 자신의 댄스웨어 라인, 그리고 트레이너. 이 목록들은 계획된 다각화가 아니라, 각 시기에 자신 앞에 놓인 것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결과처럼 보입니다.

훌륭한 예술은 결국 정교한 구조와 깊은 고뇌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고 저는 믿어왔습니다. 캔디 통의 삶에서 그 구조는 무대의 틀이 아니라, 거절과 거절 사이에서도 무너지지 않으려 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뇌가 누적된 끝에, 그는 결국 발레 규격이 정의하지 못했던 자신만의 선을 그렸습니다.

무명의 시간이 가르쳐주는 것은 재능의 유무가 아니라, 어떤 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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