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뒤에도 계속되는 춤 — 랜디 던컨이 무대에 남긴 것
2025년 8월 22일 밤, 시카고 오디토리엄 시어터의 무대 위에 도시 곳곳에서 온 무용단들이 한꺼번에 모여 섰습니다. Ballet 5:8, Hubbard Street Dance Chicago, The Joffrey Ballet, Trinity Irish Dance Company — 평소라면 각자의 극장에서 각자의 언어로 움직였을 이 단체들이, 그날 밤만큼은 한 사람의 안무 아래 피날레를 함께 완성했습니다. 그 안무를 짠 사람은 랜디 던컨(Randy Duncan). 시카고 토박이이자, 이 행사와 함께 30년을 걸어온 안무가입니다. 그리고 그날, 그는 무대에서 공로를 인정받는 자리에도 섰습니다.
이 장면만 놓고 보면 아름다운 기념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제대로 따라가려면, 무대가 환하게 빛나던 그날 밤이 아니라, 이 행사가 처음 시작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위기가 만들어낸 무대
Dance for Life는 HIV/AIDS 위기 한복판에서 태어난 행사입니다. 1980년대와 90년대 초, 예술계는 깊은 상실을 겪었습니다. 무용수들이, 안무가들이, 그리고 무대를 함께 만들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카고의 댄스 커뮤니티는 그 슬픔을 예술로 응답하기로 했습니다. 매년 단 하룻밤, 모든 단체가 경쟁을 내려놓고 같은 무대에 올라 시카고 댄스 헬스 펀드(Chicago Dance Health Fund)를 위한 기금을 모읍니다. 그렇게 35년이 흘렀고, 이 행사는 지금까지 800만 달러 이상을 모금했습니다.
랜디 던컨이 이 행사에 안무를 올리기 시작한 것은 1995년입니다. 행사가 처음 만들어진 직후부터, 그는 이 자리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한 해도 아니고, 30년 넘게. 그 긴 시간 동안 시카고의 무용 지형은 여러 차례 바뀌었을 것이고, 함께했던 얼굴들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이 무대에 돌아왔습니다.
구조를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이것은 단순한 성실함이 아닙니다. 하나의 행사가 35년을 지속한다는 것, 그리고 한 안무가가 그 안에서 30년을 함께한다는 것은 — 어떤 시스템이 제대로 설계되어 있을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기금 모금이라는 목적, 매년 새로운 단체들을 하나의 무대로 묶는 구조, 그리고 그 안에서 예술적 일관성을 지켜온 사람. 이 세 가지가 맞물렸기에 800만 달러라는 숫자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피날레를 맡는다는 것의 의미
올해 Dance for Life에서 랜디 던컨에게 맡겨진 역할은 단순히 안무가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날 밤의 피날레를 총괄했습니다. 그것도 참여한 모든 단체의 무용수들을 한 무대에 올려 함께 움직이게 하는 작업을요.
이것이 얼마나 까다로운 일인지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짐작이 됩니다. 발레 단체와 아이리시 댄스 단체와 히스패닉 스패니시 댄스 단체가 같은 언어로 움직이게 하는 안무를 짠다는 것. 각자의 몸 훈련 방식이 다르고, 음악적 감각이 다르고, 무대 위에서 공간을 읽는 방식도 다릅니다. 그 다양한 몸들을 하나의 마무리로 엮어내는 일은, 단순히 동작을 배열하는 일이 아닙니다. 각 단체의 어법을 이해하고, 그것들이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빛을 잃지 않는 접점을 찾아야 합니다.
랜디 던컨이 이 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은, 30년이라는 시간이 그에게 그 접점을 찾는 눈을 만들어줬기 때문일 것입니다. 매년 이 행사에서 서로 다른 단체들과 작업하며 쌓인 경험이, 결국 그를 이 자리에 세운 것입니다. 유산이라는 것은 종종 이런 식으로 작동합니다 — 한 번의 빛나는 성취가 아니라, 반복된 헌신이 쌓여 어느 순간 대체 불가능한 자리를 만드는 방식으로.
그리고 올해, 커뮤니티는 그 30년에 공식적인 이름을 붙였습니다. 공로 인정. 그것은 사후의 사건이 아니라, 살아있는 예술가에게 건네는 감사입니다. 하지만 그 감사의 무게를 제대로 느끼려면, 역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 HIV/AIDS 위기가 한창이던 시절, 상실의 한가운데에서 무대를 만들기로 결정했던 그 순간으로.
오늘날 우리가 이 이야기에서 읽을 수 있는 것
Dance/USA의 새 사무총장 Michele Kumi Baer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지금 무용계 전반이 재정적으로 흔들리고 있고, 기존의 방식으로는 지속이 어렵다고요. 단일 재단의 지원에 의존해온 프로그램들이 그 지원이 끝나는 순간 함께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는 자꾸 Dance for Life 쪽으로 시선이 갔습니다.
Dance for Life는 다릅니다. 이 행사는 특정 재단의 지원에 기대지 않습니다. 공연 자체가 기금 모금의 구조이고, 참여 단체들이 매년 스스로 이 무대를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구조 안에서 30년을 함께한 안무가가 있습니다. 이것이 지속가능성의 한 형태입니다 — 화려하지는 않지만, 무너지지 않는.
무용 분야 기사를 오래 읽어오다 보면, 탄생과 해체의 소식이 번갈아 옵니다. 새로운 단체가 생기고, 오래된 단체가 문을 닫고,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사라집니다. 그 흐름 속에서 35년을 버텨온 행사와 30년을 함께한 예술가의 이야기는, 단순한 미담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증거입니다 — 예술이 공동체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을 때, 어떤 위기도 그것을 쉽게 끊지 못한다는 증거.
멜라니 무어라는 무용수는 최근 이렇게 썼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열두 살 때부터 춤이 자신의 슬픔을 담아줬다고, 말로는 담을 수 없는 감정들을 움직임이 대신 처리해줬다고. HIV/AIDS로 사람들을 잃던 시절, 시카고의 무용 커뮤니티도 아마 비슷한 이유로 이 무대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것들을 함께 춤으로 담기 위해.
랜디 던컨은 그 자리에, 1995년부터 지금까지 있었습니다. 어떤 유산은 그렇게 조용히 쌓입니다 — 매년 같은 무대에 돌아오는 것만으로.
오래 한자리에 머문다는 것이, 때로는 가장 큰 예술적 발언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