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2년 런던의 드루리 레인 극장에서 라 실피드를 춘 여인의 발끝이 무대에서 떠났을 때, 그것이 역사가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밝은 조명 아래 하얀 튜튜를 입은 여인은 마치 공기 그 자체가 되어, 인간의 몸이 할 수 있는 일의 경계를 순간적으로 무너뜨렸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 타글리오니였고, 그 공연은 발레 역사를 두 부분으로 나누는 분기점이 되었다. 하지만 그 위대함이 영원히 빛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죽은 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그의 춤은 오히려 역사 속에서 잊혀가야 했고, 더 오래 지난 뒤에야 비로소 재발견되어야 했던 것이다.
무대에서 사라진 춤, 기록 속에도 사라지다
마리 타글리오니는 1804년 태어났다. 스웨덴의 발레마스터 필리포 타글리오니를 아버지로 두었으나, 그것이 그녀의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 그녀는 약한 발레리나로 평가받았고, 많은 사람이 그녀가 대무대에 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지독한 훈련, 그리고 낭만주의라는 시대정신이 만난 순간, 그녀는 자신의 몸을 새로운 언어로 재구성했다. 발끝으로 선 채 무중력처럼 춤을 추는 포앙 테크닉은 그녀가 완성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것은 분명 그녀였다.
1837년 파리에서 그녀는 라 질타로 프랑스 발레 무대를 사로잡았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그의 명성은 퍼져나갔다. 당대 최고의 무용수로서 그녀는 유럽 전역을 돌며 무대에 섰고, 수많은 무도회와 살롱에서 그의 춤은 이야기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동시에 큰 약점이었다. 발레는 인쇄되지 않는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무용 기보법이 체계화되기 전, 발레의 모든 것은 신체라는 휘발성의 매체 위에서만 존재했다. 그녀의 춤은 그것을 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있었다.
타글리오니는 1884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자, 무용 역사는 급격하게 변화했다. 19세기 말 발레는 러시아로 무게중심이 이동했고, 마리우스 페티파 같은 새로운 거장들이 나타났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레퍼토리, 새로운 스타들이 무대를 점령했을 때, 타글리오니는 점차 역사 속 이름이 되어갔다. 살아있는 무용수들의 기억 속에 그녀의 춤이 있었지만, 그것도 세대가 바뀌면서 흐릿해졌다.
역사의 장에서 복권되기까지
재흥미로운 점은 20세기 초중반에 벌어진 일이다. 발레 역사가들과 무용인들이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정통성을 찾기 시작했을 때, 타글리오니의 상징성이 다시 부상했다. 특히 1960년대부터 무용 기보법이 체계화되고, 역사 기록이 본격적으로 수집되면서, 타글리오니는 더 이상 막연한 전설이 아닌 ‘복원 가능한 예술가’로 재인식되기 시작했다.
라 실피드와 라 질타 같은 그의 주요 작품들은 무용가 스베틀라나 베리예바 같은 역사가들의 노력으로 기보법 기록으로 옮겨졌다. 그 과정에서 놀라운 발견이 있었다. 당대 비평가들의 기록과 무용수들의 구술 증언을 통해 복원된 그의 춤은, 단순한 ‘귀족적 우아함’이 아니라 매우 정교한 기하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공중 에타주, 정밀한 회전의 축, 상체와 하체의 분리된 움직임이라는 기술적 세부사항들이 모두 의도적으로 계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의 죽음 이후 100년이 넘게 지났을 때, 타글리오니는 ‘낭만주의 발레의 여신’에서 ‘기술적으로 완성된 시스템의 설계자’로 재평가되었다. 1960년대 서방 발레 단체들에서 라 실피드의 타글리오니 버전을 복원하려는 시도가 벌어졌고, 이는 단순히 과거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발레가 자신의 뿌리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러시아 발레 학파와 유럽 낭만주의 발레 전통 사이의 차이를 명확히 하는 데 있어, 타글리오니의 작품은 중요한 텍스트가 되었다.
기억의 복원이 말해주는 것
오래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위대함이 인정받는 순간과 위대함 자체는 별개라는 점이다. 타글리오니의 사례는 그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의 춤은 19세기에 위대했고, 그 위대함은 20세기 초중반까지도 여전했으나,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영원히 회자(懷舍)될 수 없었을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타글리오니의 작품이 재발견되는 과정 자체가 그의 본래 예술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읽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당대 관객들은 그의 춤에서 우아함과 초월성을 보았다면, 20세기의 무용가들은 그 안에 숨겨진 기술적 정밀함을 발견했다. 이는 단순한 재평가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과거를 통해 현재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타글리오니가 남긴 춤의 실마리들이 200년을 거쳐 다시 무대 위에 되살아나는 일 — 그것은 예술이 얼마나 쉽게 잊혀질 수 있으며, 동시에 얼마나 끈질기게 다시 나타날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우리가 현재 누리는 예술의 형태들 중 많은 것이 사실은 과거의 파편들이 현대라는 새로운 렌즈를 통해 재조립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과거와 현재를 보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