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딸을 잃고서야 붓을 들었다 — 마니나의 그림이 뒤늦게 세상에 나오기까지
부스 안에 걸린 그림 앞에서 발이 멈추는 경험이 있습니다. 설명을 읽기도 전에 먼저 몸이 반응하는 순간입니다. 맨해튼 브로이어 빌딩에서 열린 Independent 20th Century 아트페어, 리처드 살투운 갤러리 부스에 걸린 마니나의 캔버스가 그랬다고 합니다. 신화적인 여성성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극도로 정밀하게 쌓아 올린 붓질 위로 폭발적인 색채가 터져 나오는 그림. 보는 사람을 멈추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의 이름을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오스트리아-이탈리아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마니나(Manina). 마그리트와 함께 뉴욕 휴고 갤러리에서 전시했고, 1960년대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도 섰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그녀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페어의 기사는 그 이유를 짧게 언급합니다. 외동딸을 잃었고, 그 때문에 유산을 관리할 사람이 없었다고. 한 문장이었지만, 저는 한동안 그 문장 앞에 멈춰 있었습니다.
프리다 칼로를 만난 뒤에야, 붓을 들었다

마니나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였습니다. 그 계기로 기사는 멕시코에서 프리다 칼로를 만난 일을 언급합니다. 다다이스트들의 뮤즈였던 그녀가 ‘그리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 그 만남 이후였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그 만남이 어떤 방식으로 그녀를 바꾸었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 이후 그녀의 캔버스에 무엇이 담겼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신화적인 여성성, 그리고 세밀한 붓질과 폭발적인 색채가 공존하는 화면.
흥미로운 것은 그 두 요소가 얼핏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극도로 정밀하게 쌓아 올린 붓질’과 ‘폭발적인 색채’는 서로 다른 방향의 힘처럼 보입니다. 하나는 통제이고, 다른 하나는 방출입니다. 그런데 마니나는 그 두 가지를 한 화면 안에 공존시켰습니다. 공학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서로 다른 하중을 동시에 견디도록 설계된 구조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너지지 않으면서도 팽팽하게 긴장을 유지하는 방식. 그것이 마니나 그림의 내부 구조였을 것입니다.
그녀가 이 방식을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선택했는지, 아니면 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1940년대에 붓을 들기 시작한 사람이 1960년대에 베니스 비엔날레 무대에 서게 되기까지, 그 사이에 분명히 무언가가 쌓였을 것입니다. 실패한 캔버스, 다시 덮어칠한 표면, 되풀이해 그린 형태들. 그 시간이 저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을 테지요.
마그리트 옆에 섰지만, 이름은 남지 않았다
마니나는 뉴욕 휴고 갤러리에서 마그리트와 함께 전시했습니다. 같은 공간에, 같은 맥락으로. 그리고 1960년대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도 작품을 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결코 작은 이력이 아닙니다. 그런데 마그리트의 경매 최고가는 1억 2,120만 달러에 이르고, 마니나의 작품은 현재 4만 달러에서 16만 달러 사이에 거래됩니다. 같은 시대, 같은 무대에 섰던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이렇게 벌어진 데에는 재능의 차이 외에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기사는 그 이유 중 하나를 외동딸의 죽음에서 찾습니다. 딸을 잃자 유산을 관리할 사람이 없어졌고, 그 결과 그녀의 작품 세계가 제대로 정리되거나 알려질 기회를 잃었다는 것입니다. 갤러리 디렉터 모니카 킹의 설명이 기사에 인용되어 있습니다. 짧은 언급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가볍지 않습니다.
예술가의 사후 평가는 작품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누가 그 작품을 기억하고, 정리하고, 세상에 내놓느냐가 결정적으로 작용합니다. 같은 시대의 남성 예술가들이 갤러리를 바꾸거나 딜러를 찾아 자신의 이력을 이어갔던 것과 달리, 지원 구조가 없거나 끊긴 예술가들은 그 자리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기사 2에서 언급되는 로잘린 드렉슬러의 사례도 비슷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자신이 속했던 갤러리가 문을 닫자 다른 남성 예술가들은 모두 새 갤러리를 찾아 떠났고, 그녀만 남아 매체를 바꿨습니다. 마니나와 드렉슬러,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같은 페어 안에 나란히 등장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뒤늦게 열린 문 앞에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
이번 Independent 20th Century 페어의 전제는 ‘지난 세기 아방가르드의 정전을 다시 쓰는 것’이라고 기사는 전합니다. 살아 있을 때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이 특히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도 합니다. 마니나의 그림이 지금 이 자리에 나온 것도 그런 흐름의 일부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불편한 질문도 함께 따라옵니다. 이 ‘재발견’이 지금 왜 일어나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마니나의 그림이 오늘 더 가치 있어진 것인지, 아니면 시장이 새로운 ‘미발견 보석’을 필요로 하게 된 것인지. 기사는 컬렉터들이 ‘미발견 보물’에 침을 흘린다는 표현을 직접 씁니다. 솔직한 묘사입니다. 그 욕망이 마니나를 다시 불러낸 힘의 일부라는 사실을 외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브로이어 빌딩 부스 앞에서 발이 멈추었다는 그 장면을 계속 생각합니다. 1940년대에 프리다 칼로를 만나고, 홀로 붓을 들었던 사람. 마그리트 옆에 섰다가, 딸을 잃고, 유산도 없이 사라진 이름. 그 이름이 지금 다시 불리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닿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무언가는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창작은 캔버스 위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이어받고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됩니다. 마니나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작업이 세상에 남으려면 작품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조용히 일깨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