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친구가 만든 세계 — 밀턴 에이버리, 아돌프 고틀리브, 마크 로스코의 우정

1920년대 말, 뉴욕의 한 드로잉 클럽에 세 사람이 모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밀턴 에이버리, 아돌프 고틀리브, 마크 로스코. 나이도 달랐고, 기질도 달랐습니다. 에이버리는 이미 자기 색채의 언어를 조용히 다듬어가고 있었고, 고틀리브와 로스코는 아직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중이었습니다. 그 방 안에서 세 사람이 처음 나눈 것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만남이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세 사람 모두의 작품 안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워싱턴 DC의 필립스 컬렉션이 바로 이 세 예술가의 우정을 한 전시에서 조명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오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물음이 생겼습니다. 진정한 우정은 예술가를 어떻게 바꾸는가, 하고 말입니다.

스승도 제자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

밀턴 에이버리, 아돌프 고틀리브, 마크 로스코
출처: 위키백과 – Mark Rothko

세 사람의 관계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것이 전형적인 사제 관계도, 경쟁적인 라이벌 관계도 아니었다는 데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에이버리가 연장자였고, 고틀리브와 로스코는 그의 작업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에이버리는 결코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것을 조용히 캔버스 위에 올려두었고, 두 사람은 그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읽어냈습니다.

에이버리의 그림은 색면의 시인이라 불릴 만합니다. 그는 형태를 최소화하고 색채가 스스로 말하도록 두었습니다. 복잡한 구조를 가장 단순한 층위로 환원하는 감각 — 저처럼 구조를 오래 들여다본 사람 눈에는, 그것이 오히려 가장 정교한 판단의 산물로 보입니다. 불필요한 것을 다 걷어내고 남긴 것만이 진짜 뼈대니까요. 로스코와 고틀리브는 바로 그 지점을 보았을 것입니다. 색이 감정을 직접 운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물론 세 사람이 항상 같은 방향을 바라본 것은 아닙니다. 로스코는 점차 색면의 거대한 진동 속으로 파고들었고, 고틀리브는 픽토그래프와 신화적 상징의 세계로 나아갔습니다. 에이버리는 끝까지 서정적인 절제를 지켰습니다. 같은 출발점에서 세 갈래의 서로 다른 길이 뻗어나간 셈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이 우정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서로를 닮으려 하지 않았기에, 서로에게 진짜 영향을 줄 수 있었다는 것.

충돌보다 깊었던 것 — 대화가 작품에 남긴 자국

밀턴 에이버리, 아돌프 고틀리브, 마크 로스코
출처: 위키백과 – 밀턴 에이버리, 아돌프 고틀리브, 마크 로스코

예술가들 사이의 우정이 작품에 남기는 흔적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직접적인 인용이나 노골적인 오마주보다, 오히려 어떤 질문을 품게 했는가, 어떤 두려움을 함께 견뎠는가 하는 식으로 새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 사람이 서로의 작업실을 오가고, 서로의 그림 앞에서 오래 서 있었을 시간들을 상상해봅니다. 그 시간들이 각자의 붓질에 스며들었을 것입니다.

로스코의 후기 색면화들은 보는 사람을 그 색의 진동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종교적 경험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색채의 직접성, 형태를 거치지 않고 감정에 도달하려는 욕망은 에이버리와의 긴 대화 없이 형성되었을까요. 로스코 자신이 에이버리를 깊이 존경했다는 이야기는 여러 곳에서 전해집니다. 스스로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는 예술가가 드문 세계에서, 그것은 작지 않은 고백입니다.

고틀리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픽토그래프 연작은 원시적 상징들을 격자 안에 배치한 독특한 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에이버리에게서 온 색채의 감각도, 로스코와 나눈 신화적 주제에 대한 공통된 관심도 함께 녹아 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세 사람은 같은 언어를 쓰지 않았지만, 같은 문제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회화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필립스 컬렉션의 이번 전시가 흥미로운 것은, 그 우정 자체를 하나의 주제로 설정했다는 점입니다. 작품만이 아니라 관계를 보여주겠다는 기획입니다. 작품들을 나란히 두면 서로에게 건넨 말들이 조금씩 들릴 수 있을 것입니다. 눈으로 듣는 대화라고 해야 할까요.

오늘 우리에게 남은 것

밀턴 에이버리, 아돌프 고틀리브, 마크 로스코
출처: 위키백과 – 밀턴 에이버리, 아돌프 고틀리브, 마크 로스코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오래 생각하다 보니, 예술가의 삶에서 관계가 차지하는 무게가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흔히 예술을 고독한 개인의 산물로 상상합니다. 천재는 홀로 탄생한다는 신화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에이버리와 고틀리브와 로스코의 사례는 그 신화에 조용히 이의를 제기합니다. 좋은 우정은 서로를 복제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각자가 더 깊이 자기 자신이 되도록 밀어줍니다.

워싱턴 DC의 필립스 컬렉션이라는 공간도 이 맥락에서 의미심장합니다. 필립스 컬렉션은 미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문을 연 현대미술관 중 하나로, 설립자 던컨 필립스 자신이 예술가들과의 관계를 깊이 소중히 여긴 인물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세 예술가의 우정을 그 공간에서 조명하는 것은, 어쩌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전시 소식을 접하면서 잠깐, 오래전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나눴던 대화들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여기서 할 것이 아니고, 지금 중요한 것은 세 예술가가 서로에게 건넨 긴 질문들입니다. 에이버리는 색이 형태 없이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먼저 보았고, 로스코와 고틀리브는 그 가능성을 각자의 세계로 가져갔습니다. 누가 더 위대한지를 따지는 것은 이 이야기에서 가장 지루한 질문일 것입니다. 세 사람이 함께였기에 가능했던 것들, 그것이 이 우정의 진짜 유산입니다.

좋은 관계란 서로를 더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지, 서로를 닮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 이 세 화가의 이야기는 그 어떤 말보다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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