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의 오두막이 닭장이 되던 날, 그는 이미 없었다

어느 여름, 오스트리아 남쪽 산자락의 작은 오두막에서 소년들이 밥을 지었습니다. 장작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그 안에서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한 사람이 교향곡을 썼다는 사실을. 이따금 바람이 산에서 내려와 문을 두드렸을 텐데, 소년들은 그냥 문을 닫았겠지요.

이 이야기는 이탈리아 자치주 남티롤의 토블라흐(Toblach)에서 시작됩니다. 구스타프 말러가 생애 마지막 몇 해를 보내며 작품을 완성하던 곳입니다. 그가 머물던 여관은 지금도 같은 집안이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관광객의 방문은 거절하고 있고, 한때 붙어 있던 ‘말러가 여기 머물다’라는 명패는 뜯겨 나갔습니다. 그 자리엔 화살표 하나가 붙었는데, 방향이 가리키는 곳은 작은 동물원이었다고 하지요. 작곡 오두막을 그늘지게 하던 나무들은 베어졌고, 부지는 울타리로 막혔습니다. 그리고 어느 해 여름, 그 오두막은 소년 캠프의 취사장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거인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것들

말러 (Mahler)
출처: 위키백과 – Gustav Mahler

말러가 세상을 떠난 것은 1911년의 일입니다. 예술가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공간은 남았고, 그 공간은 시간이 흐르면서 전혀 다른 용도로 쓰이거나 방치되거나 혹은 지워졌습니다. 이것이 꼭 악의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자기 삶을 살았을 뿐이고, 말러의 오두막은 그들에게 당장 쓸모가 있는 건물이었을 테니까요.

그 오두막을 영국박물관으로 옮기자는 제안이 실제로 나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멀리서 누군가가 그 공간의 가치를 알아봤다는 뜻이기도 하고, 반대로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오래도록 그 가치를 크게 여기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결국 토블라흐는 직접 행동에 나섰습니다. 역 옆에 있던 낡은 그랜드 호텔을 복원하고, 500석 규모의 연주홀을 들였습니다. 지금은 매년 7월과 8월, 볼차노와 본에서 온 두 오케스트라가 이곳에서 말러의 교향곡을 연주합니다. 하이킹을 마치고 내려온 여행자들, 자전거를 세워둔 사람들, 단정하게 차려입은 지역 주민들이 함께 앉아 그 음악을 듣습니다.

오두막이 취사장이 되던 시절과, 산 위 해발 2천 미터 공연장에서 하이커들이 말러를 듣는 오늘 사이에는 꽤 긴 시간이 놓여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무언가가 달라졌습니다. 정확히 무엇이 달라진 걸까요.

평판은 사후에도 흔들린다

말러 (Mahler)
출처: 위키백과 – 말러 (Mahler)

예술가의 유산이란 단단한 것이 아닙니다. 마치 구조물처럼 보이지만, 실은 끊임없이 외부 하중을 받으며 조금씩 변형되는 것에 가깝습니다. 말러의 경우, 생전엔 지휘자로서의 명성이 훨씬 컸고 작곡가로서의 평가는 사후에야 본격적으로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숨진 뒤 수십 년이 지나, 레너드 번스타인 같은 지휘자들이 그의 교향곡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면서 비로소 오늘날 우리가 아는 ‘말러의 위상’이 만들어졌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토블라흐의 오두막이 취사장으로 쓰이던 시절은, 말러의 평판이 아직 그 지역 사람들의 일상 안으로 스며들지 못했던 시절이었던 셈입니다. 무관심이 꼭 적대감은 아닙니다. 그냥 아직 와닿지 않은 것이지요.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이 와닿기 시작했습니다. 호텔이 복원되고, 연주홀이 생기고, 여름마다 오케스트라가 찾아오면서, 그 땅은 말러와 다시 연결되기 시작한 겁니다.

이 흐름은 아래로부터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외부의 시선과 내부의 결심이 어느 지점에서 만났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박물관으로 오두막을 가져가려 했던 바깥의 제안이 도리어 지역 사회를 자극했을 수도 있고, 점점 커지는 말러 음악의 국제적 위상이 이 작은 산골 마을에도 서서히 닿았을 것입니다.

산에서 듣는 음악은 다르게 들린다

말러 (Mahler)
출처: 위키백과 – 말러 (Mahler)

이번에 그 산을 직접 오른 한 필자의 기록이 있습니다. 해발 2천 미터 이상의 고지에서 말러의 음악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경험을 그는 평지에서 듣는 것과 다르다고 표현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읽으면서 잠시 멈췄습니다. 공학을 평생 다루다 보면 같은 재료도 조건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걸 몸으로 압니다만, 음악도 그런 것 같습니다. 같은 악보, 같은 연주라 해도, 그것이 놓이는 장소와 공기가 달라지면 듣는 사람에게 닿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말러가 그 음악을 쓴 곳, 그 산의 공기와 바람과 높이 속에서 그것을 다시 들을 때, 무언가 더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작곡가가 귀로 들은 것들, 그가 창문 밖을 내다보며 들이켰던 공기, 그가 걸었을 흙길의 감촉 같은 것들이 음표 안에 실려 있다면, 그 음표는 같은 공간에서 열릴 때 더 넓게 펼쳐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지요.

오두막이 취사장으로 쓰이던 시절, 그 공간 안에서도 말러의 음악은 어딘가에 남아 있었을 겁니다. 다만 아무도 그것을 꺼내 들으려 하지 않았을 뿐이고, 아무도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예술가가 남긴 것은 공간 속에 잠들어 있었고, 세상이 준비되었을 때 비로소 다시 깨어났습니다.

예술가의 삶이 끝난 뒤에도 그 삶이 남긴 것들은 계속 세상과 관계를 맺습니다. 때로는 무관심 속에 잊히고, 때로는 엉뚱한 용도로 쓰이다가, 언젠가 다시 제 빛을 찾기도 합니다. 말러의 오두막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 빛이 돌아왔을 때, 산 위에서 그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들 중에도, 훗날 누군가가 다시 꺼내 빛을 되돌려줄 것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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