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먼저 알아듣는 것들 — 샤멜 핏츠가 무용 너머로 건넨 것

어두운 공간 한가운데, 여섯 명의 흑인 여성과 퀴어 퍼포머들이 천천히 움직입니다. 무대는 자궁을 닮은 구조물로 둘러싸여 있고, 조명은 붉습니다. 객석에는 평소 무용 공연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얼굴들이 앉아 있습니다. 나이트클럽에서 온 듯한 사람들, 시각예술가들, 시인들. 공연이 끝난 뒤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그 동작이 아름다웠다”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어딘가에서 느꼈던 것이 저기 있었다”는 말에 가깝습니다. 샤멜 핏츠의 작품 Marks of RED가 링컨센터 무대에 오르기 전, 이미 그것은 여러 장르의 경계를 조용히 흔들어놓고 있었습니다.

무용수가 아니라 ‘기억의 조각가’로

샤멜 핏츠는 뉴욕 브루클린의 베드퍼드-스타이베선트 동네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가 여는 파티에서, 혹은 거리의 힙합 크루와 함께 몸을 움직이던 아이였습니다. 정식 훈련 없이 라과디아 고등학교 오디션에 합격했고, 이후 줄리아드를 거쳐 오하드 나하린의 바츠셰바 무용단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가 가가(Gaga) 움직임 언어와 만났을 때, 스스로 말하기를 “어린 시절 나이트라이프 공간에서 몸이 기억하던 것들이 다시 열렸다”고 했습니다. 이 발언은 인터뷰 속 미사여구가 아닙니다. 핏츠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구조입니다.

그의 첫 번째 솔로 작품 BLACK BOX는 텔아비브의 자기 아파트 안, 작고 이상하게 생긴 방에서 탄생했습니다. 서른 번째 생일에 서른 명의 친구들 앞에서 초연된 이 작품에는 프로듀서, 두 명의 디제이, 바디페인트 아티스트, 프로젝션 아티스트가 함께했습니다. 무용 작품이라고 부르기에는 이미 장르의 언어가 여럿 섞여 있었습니다. 핏츠 자신은 이를 두고 “많이 움직이지 않는 움직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표현했습니다. 지속적인 타블로, 강렬하게 끓어오르는 정지. 나중에 그는 이것이 부토(butoh)의 느린 통제와 닮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가 무용 이외의 장르에 ‘영향을 주려 했다’기보다, 처음부터 여러 장르의 감각을 자신의 몸 안에 함께 품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영향은 의도가 아니라 구조에서 흘러나옵니다. 공학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작품은 처음부터 다중 입력을 받아들이도록 설계된 시스템이었습니다.

나이트라이프, 시, 영상이 무대로 걸어 들어오는 방식

BLACK VELVET에서는 영상·조명 예술가 루카 델 카를로가 1차 창작자로 공식 크레딧에 이름을 올립니다. 파트너 작품에서 영상 작가가 안무가와 동등한 창작자로 기재되는 일은 지금도 드뭅니다. 이것은 단순히 협업에 관대한 태도가 아닙니다. 핏츠는 자신의 작품이 무용이라는 카테고리 안에만 완결될 수 없다는 것을 초기부터 구조적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BLACK HOLE은 2016년 미국 대선 이후 탄생했습니다. 핏츠는 “무너진 것처럼 느껴지는 세계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며, 블랙홀을 “더 나은 공유된 인간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포털”로 상상했습니다. 이 작품에는 아프로퓨처리즘의 미학이 깊이 배어 있습니다. 그러나 핏츠는 아프로퓨처리즘을 “미학이 아니라 에토스”라고 말합니다. 급진적 상상력, 흑인의 번영과 해방을 가치로 삼는 태도. 이 에토스는 시각예술계와 문학계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어온 흐름입니다. 핏츠의 무대는 그 흐름이 몸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형태로 나타난 사례입니다.

시인 클로디아 랭킨은 핏츠와 협업하여 연극 Help를 만들었고, 지금은 TRIBE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랭킨은 핏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비전에 대해 명확하면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당신은 그가 가려는 어디든 따라가게 된다.” 이 말은 협업자로서의 인물 평이지만, 동시에 그의 작품이 장르를 넘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방식을 정확히 설명합니다. 억지로 초대하지 않습니다. 문을 열어두면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저도 오래전 강단에 서던 시절, 가장 좋은 강의는 설명이 아니라 구조가 스스로 말하게 두는 것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핏츠의 무대는 그런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TRIBE가 만드는 것 — 공간, 그리고 다음 세대의 언어

핏츠가 2019년 브루클린으로 돌아와 설립한 TRIBE는 단순한 무용단이 아닙니다. 그는 이것을 “진정한 집단”으로 구축하려 했고, 실제로 구성원들은 핏츠의 작품뿐 아니라 자신의 안무 작업에서도 TRIBE의 자원과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TRIBE 구성원이자 Marks of RED의 퍼포머인 마르셀라 루이스는 “예산, 보조금 작성, 마케팅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뭔가 독특하고 혁신적인 것의 일부라는 느낌”이라는 표현도 덧붙입니다.

핏츠는 또한 TRIBE Studios라는 플랫폼을 통해 예술가와 지역 공동체 구성원들을 집단의 창작 과정 안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워크숍, 대화, 움직임 수련, 다학제적 교류. 그는 이것을 패션 하우스의 아틀리에에 비유합니다. 이 비유는 흥미롭습니다. 아틀리에는 완성된 제품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을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무용이 다른 장르에 영향을 주는 방식이 바로 이렇습니다.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을 통해, 같은 공간에 있었던 사람들의 몸과 생각 속으로 스며드는 것입니다.

드라마터그이자 큐레이터인 멜라니 조지는 핏츠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내가 이전에 본 어떤 것과도 다르다”고 느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가 끌어모은 관객은 내가 보통 무용 공연에서 보지 못하던 사람들이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의 작품은 무용을 이미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무용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장르에서 살아온 감각을 가진 사람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각자의 장르로 돌아가 무언가를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훌륭한 예술이 다른 장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기술이나 형식을 수출하는 일이 아닙니다. 어떤 장르에서도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을 먼저 몸으로 보여줄 때, 그 파문은 스스로 퍼져나갑니다. 샤멜 핏츠의 작업이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것은 바로 그 가능성입니다 — 자신이 자란 골목의 기억과 미래의 상상을 같은 무대 위에 올릴 수 있다면, 어떤 경계도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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