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흔적을 음악으로 새긴 두 사람 — 이본 로리오와 메시앙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청중 일부가 자리를 떴습니다. 몇몇은 무리를 지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한 독일 평론가는 그 자리에서 이런 말을 받아 적었습니다. “적어도 감정적인 수준에서만큼은, 이 곡의 본질이 관객에게 닿았다는 증거다.” 그 본질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전쟁의 얼굴, 점령의 상처,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으려 한 한 젊은 음악가의 고집이었습니다.

이번에 다시 무대에 오른 오라토리오 「La Sainte Face(거룩한 얼굴)」는 이본 로리오가 21세에 쓴 작품입니다. 기사에는 “a 21 year-old French student who went on to other things”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다른 길로 나아간 사람. 맞습니다. 로리오는 이후 이 곡의 작곡가로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음악사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젊은 시절의 작품을, 그리고 그 작품을 가능하게 한 관계를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두 사람이 만난 교실

이본 로리오 (Yvonne Loriod)
출처: 위키백과 – Yvonne Loriod

이본 로리오와 올리비에 메시앙은 사제 관계로 출발했습니다. 메시앙은 파리 음악원에서 화성과 분석을 가르쳤고, 로리오는 그의 수업에 들어온 학생이었습니다. 이 만남이 언제 어떤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는지를 저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기록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해지기도 합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메시앙이 로리오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보았다는 것, 그리고 그 인정이 단순한 칭찬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만났을 무렵, 파리는 독일 점령 하에 있었습니다. 메시앙은 「시간의 끝을 위한 사중주」를 포로수용소에서 작곡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곡은 전쟁의 시간 속에서도 영원을 노래하려 했습니다. 예수의 불멸, 천상의 빛, 그것이 메시앙이 선택한 방향이었습니다. 로리오는 같은 시대, 같은 공기를 마시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La Sainte Face」는 전쟁의 흔적이 새겨진 얼굴에 대한 음악입니다. 독일 음악 전문지 NMZ의 평론가가 인용한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전쟁과 점령의 끔찍한 상처로 지워지지 않게 새겨진 얼굴”에 관한 곡입니다. 마지막 악장의 알렐루야에서도 그 거친 마찰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해소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습니다. 스승이 초월을 택했다면, 제자는 현실 속에 끝까지 머물렀습니다.

협력과 거리, 그 사이 어딘가

이본 로리오 (Yvonne Loriod)
출처: 위키백과 – 이본 로리오 (Yvonne Loriod)

사제 관계란 늘 단순하지 않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의 세계가 배우는 사람의 세계와 완전히 겹칠 수는 없습니다. 로리오는 메시앙의 피아니스트가 되었고, 훗날 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음악적으로 가장 가까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초기 작품에서 로리오는 스승과는 다른 언어를 골랐습니다.

메시앙은 카톨릭 신앙을 음악의 언어로 삼았지만, 그것은 고통 너머의 빛을 향한 언어였습니다. 로리오의 「La Sainte Face」도 카톨릭 신앙에 뿌리를 둡니다. 기사는 이렇게 씁니다. “grounded in the Catholic faith.” 그러나 이 곡이 도착하는 곳은 다릅니다. 위안이 아니라 불편함, 선율적 탈출이 아니라 마찰입니다. 같은 신앙의 언어를 쓰면서도, 로리오는 다른 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구조를 들여다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기계든 악보든, 잘 만들어진 것에는 반드시 그 선택의 이유가 있습니다. 「La Sainte Face」의 구조적 선택 — 마지막까지 해소를 거부하는 긴장, 불협화음을 끝내 봉합하지 않는 태도 —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21세의 로리오가 그 선택을 의식적으로 했는지, 아니면 그저 본능적으로 그쪽으로 손이 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스승의 방향과는 결이 달랐다는 점만큼은 또렷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라이벌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경쟁이라기보다는 차이였습니다. 그 차이가 갈등으로 표출되었다는 기록은 제가 알기로 없습니다. 오히려 두 사람은 평생을 함께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음악적 차이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저는 그것을 가장 성숙한 형태의 사제 관계로 봅니다. 스승의 방법론을 충분히 익힌 다음, 자신만의 결론으로 나아간 것. 그것이 진짜 배움의 증거일 수 있습니다.

작품에 남은 흔적, 그리고 오늘

「La Sainte Face」는 수십 년 동안 거의 연주되지 않았습니다. 로리오가 “다른 길로 나아간” 이후, 이 곡은 오래도록 조용히 있었습니다. 기사가 이 곡의 재발굴을 “exhumation”이라고 표현한 것이 눈에 걸립니다. 발굴이 아니라 발굴, 그러니까 땅에 묻혔던 것을 꺼내는 일. 그만큼 오래 잠들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곡이 지금 무대에 올랐을 때, 어떤 청중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어떤 청중은 걸작이라고 했습니다. 같은 음악 앞에서 이렇게 다른 반응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 곡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무 감흥도 주지 못하는 음악은 아무도 화나게 하지 않습니다.

메시앙은 이미 클래식 음악사의 중심에 자리를 잡은 이름입니다. 로리오는 그의 피아니스트로, 그의 아내로, 그의 작품의 가장 충실한 해석자로 기억됩니다. 그것도 결코 작은 자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무대에 오른 「La Sainte Face」는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로리오가 오직 메시앙의 세계 안에서만 살았던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이미 젊은 시절에 가지고 있었다는 것. 그 목소리가 스승과 달랐다는 것.

사제 관계에서 제자가 스승과 다른 언어를 갖는 순간, 그것은 배신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관계가 진짜로 작동했다는 신호입니다. 누군가의 곁에서 충분히 배웠기에, 이제 혼자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로리오의 「La Sainte Face」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말은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가장 좋은 스승은 제자가 자기와 달라지도록 내버려두는 사람이고, 가장 좋은 제자는 그 다름을 용기 있게 음악으로 써내는 사람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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