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에서 시작된 음악 — 탐 페티가 남긴 시작의 흔적들
노래 하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그 안에는 얼마나 많은 버전이 묻혀 있을까요. 우리가 라디오에서 수십 년째 듣는 탐 페티의 목소리 뒤에도, 완성되지 못한 채 테이프 속에 잠들어 있던 곡들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5장짜리 박스 세트 『Origins 1971-1978』은 그 잠든 시간들을 꺼내 놓습니다. 그 안에는 지금껏 한 번도 세상에 나온 적 없는 곡 “Parade of Loons”도 담겨 있습니다. 미발표곡이라는 말에는 늘 어떤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버려진 것이 아니라,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이라는 뉘앙스가 있지요.
완성작 뒤에 가려진 시간들

탐 페티와 하트브레이커스는 1970년대 후반부터 미국 록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Breakdown”, “American Girl”, “Refugee” — 이 곡들은 지금도 어느 술집 주크박스에서든 흘러나오고, 듣는 순간 그 시절의 공기가 되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그 단단한 완성작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 모습이 됐는지는, 대부분의 청중에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음악은 완성되는 순간 과거를 지웁니다. 최종본만이 기억되고, 그것에 이르기까지의 시도와 실패와 방황은 테이프 더미 속에 묻히거나 아예 소각됩니다.
이번 박스 세트 『Origins 1971-1978』은 그 묻힌 시간을 복원하려는 시도입니다. 1971년부터 1978년, 그러니까 탐 페티가 스물 초반의 나이로 플로리다의 어딘가에서 밴드를 꾸리던 시절부터, 하트브레이커스가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던 시점까지의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이 시기는 그가 아직 “탐 페티”라는 브랜드가 되기 이전, 그냥 음악이 좋아서 소리를 만지던 시절입니다.
소리를 빚어가던 방식

창작이라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저는 오래된 공학 교재들을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설계도는 최종본만 남지만, 그 옆에 빼곡하게 적힌 계산 오류와 수정 흔적들이 진짜 설계의 역사입니다. 음악도 다르지 않습니다. “Parade of Loons”는 그 수정 흔적 중 하나입니다. 기사에 공개된 영상에서 이 곡의 윤곽을 들을 수 있는데, 완성된 하트브레이커스의 사운드와는 분명 다른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거칠함이 있고, 동시에 그 거칠함 속에 이미 페티 특유의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1971년이라면 탐 페티는 스무 살이었습니다. 이 박스 세트가 담은 시간의 시작점은 그의 스무 살입니다. 그때 그가 어떤 환경에서 녹음을 했는지, 어떤 장비를 썼는지, 누구와 함께 소리를 맞춰 나갔는지 — 그 구체적인 디테일은 기사 밖에서 더 깊이 확인해야 하겠지만, 1970년대 초 플로리다의 젊은 뮤지션들이 대개 그렇듯 변변한 스튜디오 없이 시작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세상에 나오지 못한 곡이 이번에 처음 공개된다는 사실 자체가, 이 시기의 녹음들이 당시에는 미완성이거나 공개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음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시기의 기록이 5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박스 세트로 묶여 나왔다는 점입니다. 누군가 그 테이프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고, 누군가는 그것이 언젠가 의미를 가질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는 뜻입니다. 음악이 완성되지 않았더라도, 그것이 탐 페티라는 예술가가 소리를 찾아가던 흔적이라면 그 자체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본 것이지요.
박스 세트의 구성은 5장의 LP입니다. 1971년부터 1978년까지 7년의 시간을 5장 안에 담았다는 것은, 이 시기가 단순한 습작기가 아니라 꽤 밀도 있는 음악적 탐색의 시간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7년 동안 탐 페티는 사운드의 방향을 잡아가고 있었을 겁니다. 어떤 곡은 살아남아 정규 앨범에 실렸을 것이고, 어떤 곡은 “Parade of Loons”처럼 50년 넘게 테이프 속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미완성이 전하는 것

우리는 대개 완성된 것만 보고 싶어합니다. 전시장에 걸린 그림, 차트에 오른 앨범, 무대에서 빛나는 공연 — 그 뒤에 있는 실패와 폐기와 망설임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예술은 결국 정교한 구조와 깊은 고뇌가 만나는 지점에 있고, 그 고뇌의 자취가 바로 이런 미발표 녹음들 안에 새겨져 있습니다.
탐 페티는 2017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살아서 이 박스 세트의 출시를 직접 기획했는지, 아니면 유족과 주변 사람들이 그의 뜻을 이어 꾸린 것인지는 기사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Origins”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것은, 이 음반을 만든 사람들이 이 시기를 단순한 과거 아카이브가 아니라 하나의 기원(起源)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탐 페티라는 예술가가 어디서 시작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기원을 들여다보는 일은, 완성작을 다시 보는 방식을 바꿉니다. “American Girl”을 들을 때, 이제 우리는 그 곡이 처음부터 그렇게 단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걸 압니다. 어딘가에 그 곡의 전 단계가 있었을 것이고, 그 전 단계에는 또 다른 전 단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층위들을 하나씩 벗겨내면, 결국 1971년의 스무 살 청년이 소리를 향해 처음 손을 뻗던 순간과 만납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완성작에는, 공개되지 못한 채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초고들이 있습니다. 그 초고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래 간직한 사람만이, 언젠가 그것을 의미 있는 이야기로 꺼내 놓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