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에서 시작된 음악 — 탐 페티가 남긴 시작의 흔적들

노래 하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그 안에는 얼마나 많은 버전이 묻혀 있을까요. 우리가 라디오에서 수십 년째 듣는 탐 페티의 목소리 뒤에도, 완성되지 못한 채 테이프 속에 잠들어 있던 곡들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5장짜리 박스 세트 『Origins 1971-1978』은 그 잠든 시간들을 꺼내 놓습니다. 그 안에는 지금껏 한 번도 세상에 나온 적 없는 곡 “Parade of Loons”도 담겨 있습니다. 미발표곡이라는 말에는 늘 어떤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버려진 것이 아니라,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이라는 뉘앙스가 있지요.

완성작 뒤에 가려진 시간들

탐 페티 (Tom Petty)
출처: 위키백과 – Tom Petty

탐 페티와 하트브레이커스는 1970년대 후반부터 미국 록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Breakdown”, “American Girl”, “Refugee” — 이 곡들은 지금도 어느 술집 주크박스에서든 흘러나오고, 듣는 순간 그 시절의 공기가 되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그 단단한 완성작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 모습이 됐는지는, 대부분의 청중에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음악은 완성되는 순간 과거를 지웁니다. 최종본만이 기억되고, 그것에 이르기까지의 시도와 실패와 방황은 테이프 더미 속에 묻히거나 아예 소각됩니다.

이번 박스 세트 『Origins 1971-1978』은 그 묻힌 시간을 복원하려는 시도입니다. 1971년부터 1978년, 그러니까 탐 페티가 스물 초반의 나이로 플로리다의 어딘가에서 밴드를 꾸리던 시절부터, 하트브레이커스가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던 시점까지의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이 시기는 그가 아직 “탐 페티”라는 브랜드가 되기 이전, 그냥 음악이 좋아서 소리를 만지던 시절입니다.

소리를 빚어가던 방식

탐 페티 (Tom Petty)
출처: 위키백과 – 탐 페티 (Tom Petty)

창작이라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저는 오래된 공학 교재들을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설계도는 최종본만 남지만, 그 옆에 빼곡하게 적힌 계산 오류와 수정 흔적들이 진짜 설계의 역사입니다. 음악도 다르지 않습니다. “Parade of Loons”는 그 수정 흔적 중 하나입니다. 기사에 공개된 영상에서 이 곡의 윤곽을 들을 수 있는데, 완성된 하트브레이커스의 사운드와는 분명 다른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거칠함이 있고, 동시에 그 거칠함 속에 이미 페티 특유의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1971년이라면 탐 페티는 스무 살이었습니다. 이 박스 세트가 담은 시간의 시작점은 그의 스무 살입니다. 그때 그가 어떤 환경에서 녹음을 했는지, 어떤 장비를 썼는지, 누구와 함께 소리를 맞춰 나갔는지 — 그 구체적인 디테일은 기사 밖에서 더 깊이 확인해야 하겠지만, 1970년대 초 플로리다의 젊은 뮤지션들이 대개 그렇듯 변변한 스튜디오 없이 시작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세상에 나오지 못한 곡이 이번에 처음 공개된다는 사실 자체가, 이 시기의 녹음들이 당시에는 미완성이거나 공개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음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시기의 기록이 5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박스 세트로 묶여 나왔다는 점입니다. 누군가 그 테이프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고, 누군가는 그것이 언젠가 의미를 가질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는 뜻입니다. 음악이 완성되지 않았더라도, 그것이 탐 페티라는 예술가가 소리를 찾아가던 흔적이라면 그 자체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본 것이지요.

박스 세트의 구성은 5장의 LP입니다. 1971년부터 1978년까지 7년의 시간을 5장 안에 담았다는 것은, 이 시기가 단순한 습작기가 아니라 꽤 밀도 있는 음악적 탐색의 시간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7년 동안 탐 페티는 사운드의 방향을 잡아가고 있었을 겁니다. 어떤 곡은 살아남아 정규 앨범에 실렸을 것이고, 어떤 곡은 “Parade of Loons”처럼 50년 넘게 테이프 속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미완성이 전하는 것

탐 페티 (Tom Petty)
출처: 위키백과 – 탐 페티 (Tom Petty)

우리는 대개 완성된 것만 보고 싶어합니다. 전시장에 걸린 그림, 차트에 오른 앨범, 무대에서 빛나는 공연 — 그 뒤에 있는 실패와 폐기와 망설임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예술은 결국 정교한 구조와 깊은 고뇌가 만나는 지점에 있고, 그 고뇌의 자취가 바로 이런 미발표 녹음들 안에 새겨져 있습니다.

탐 페티는 2017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살아서 이 박스 세트의 출시를 직접 기획했는지, 아니면 유족과 주변 사람들이 그의 뜻을 이어 꾸린 것인지는 기사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Origins”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것은, 이 음반을 만든 사람들이 이 시기를 단순한 과거 아카이브가 아니라 하나의 기원(起源)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탐 페티라는 예술가가 어디서 시작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기원을 들여다보는 일은, 완성작을 다시 보는 방식을 바꿉니다. “American Girl”을 들을 때, 이제 우리는 그 곡이 처음부터 그렇게 단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걸 압니다. 어딘가에 그 곡의 전 단계가 있었을 것이고, 그 전 단계에는 또 다른 전 단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층위들을 하나씩 벗겨내면, 결국 1971년의 스무 살 청년이 소리를 향해 처음 손을 뻗던 순간과 만납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완성작에는, 공개되지 못한 채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초고들이 있습니다. 그 초고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래 간직한 사람만이, 언젠가 그것을 의미 있는 이야기로 꺼내 놓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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