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물은 공예가 아니다 — 아니 알베르스가 끝내 증명한 것

1922년의 바우하우스를 잠깐 상상해 보십시오. 기하학과 기능주의가 지배하는 그 공간에서, 여학생들은 직조 공방으로 배정됩니다. 회화 수업도 아니고, 조각 수업도 아닙니다. 실과 베틀이 놓인 방으로 가는 것입니다. 당시 바우하우스의 암묵적 관행이었습니다. 그 배정을 받은 학생 중 한 명이 아니 알베르스였습니다. 그녀는 원래 회화를 하고 싶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결국 직조 공방에 남았고, 그 선택 — 아니, 그 강요 — 이 훗날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다시 쓰게 됩니다.

실을 다루는 손은 예술가의 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니 알베르스 (Anni Albers)
출처: 위키백과 – Anni Albers

알베르스가 살던 시대에 직물은 미술관의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캔버스에 유화를 올리는 행위는 ‘예술’이었고, 씨실과 날실을 교차하는 행위는 ‘공예’였습니다. 이 경계는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시장, 비평계가 합심해서 그어놓은 선이었습니다. 미술관은 직물을 수집하더라도 그것을 응용미술관이나 민속관의 영역으로 밀어두었고, 주류 미술 비평은 직조 작품을 정식으로 논하지 않았습니다.

그 선 안에서 알베르스는 평생 일했습니다. 바우하우스에서 익힌 기하학적 사고를 직물의 구조 속에 녹여 넣으며, 색채와 형태가 교직되는 방식을 탐구했습니다. 공학을 조금 아는 사람이 그녀의 작품을 보면 직물이 아니라 정밀하게 설계된 격자 구조를 보게 됩니다 — 실 한 올의 방향이 전체 패턴의 광학적 효과를 바꾸는, 일종의 연산입니다. 그러나 당대의 비평 언어는 그 정밀함을 포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직물은 직물이었고, 예술은 예술이었습니다.

알베르스가 남편 요제프 알베르스와 함께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블랙 마운틴 칼리지에 자리를 잡은 뒤에도, 그 구분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색채 이론가이자 화가로 점점 더 넓은 명성을 얻었고, 아내는 여전히 직조 공방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도 스포트라이트가 향하는 방향은 달랐습니다.

재평가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왔습니다

아니 알베르스 (Anni Albers)
출처: 위키백과 – 아니 알베르스 (Anni Albers)

전환점은 단번에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알베르스 본인이 이론과 글쓰기로 자신의 작업을 직접 설명하기 시작한 것이 하나의 계기였습니다. 그녀는 직물이 단순한 손재주가 아니라 사유의 매체임을 주장하는 글을 썼고, 그 글들이 조금씩 미술계의 논의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더 결정적인 흐름은 20세기 후반, 미술사 자체가 다시 쓰이기 시작하면서 왔습니다. 페미니즘 미술 비평이 ‘공예’와 ‘예술’ 사이의 위계가 어떻게 젠더 편견과 맞닿아 있는지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알베르스의 작업은 재발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직물이 공예로 폄하되었던 것이 곧 여성의 작업이 폄하되었던 것과 같은 구조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알베르스는 그 편견 속에서 살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온몸으로 반박하며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미국 현대미술관(MoMA)이 1949년에 그녀에게 단독 전시를 열어준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직물 예술가에게 미술관이 단독 전시를 내어준다는 것, 그것은 제도가 자기 경계를 조금 물러섰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조차도 당시에는 예외적인 사례로 받아들여졌을 뿐, 직물 전반의 위상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재평가는 훨씬 느리게 왔습니다. 2010년대 이후, 미술관들이 소장품의 위계를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직물과 섬유 예술이 주류 전시 공간 안으로 들어오는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알베르스의 이름은 바우하우스 100주년 전시들에서, 현대 추상의 계보를 다시 짜는 기획들에서 반복해서 등장했습니다.

오늘, 미술관은 그녀의 이름을 다르게 부릅니다

아니 알베르스 (Anni Albers)
출처: 위키백과 – 아니 알베르스 (Anni Albers)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가 최근 발행한 책 『Woven Histories: Textiles and Modern Abstraction』은 그 흐름의 현재 지점을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이 책은 직물을 “현대 추상의 주요한 힘”으로 정의하며, 아니 알베르스를 20세기 초 혁명적 여성 예술가들 중 하나로 자리매김합니다. ‘공예’의 언어가 아니라 ‘추상미술’의 언어로 직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50명 이상의 예술가를 다루는 이 책이 파인아트와 공예 사이의 위계를 해체한다고 명시하는 것 자체가, 알베르스 세대가 평생 싸워온 그 경계를 공식적으로 허무는 행위입니다.

알베르스가 살아서 이 장면을 보았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요. 담담했을 것 같기도 하고, 쓸쓸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재평가는 늘 그 사람이 가장 외로웠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도착하니까요.

흥미로운 것은, 알베르스의 이름이 재평가되는 과정이 홀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소니아 들로네, 소피 토이버-아르프 — 같은 시대, 같은 구조적 편견 속에서 일했던 여성들이 함께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Woven Histories』가 그 이름들을 나란히 놓는 방식이 바로 그것을 보여줍니다. 한 개인이 억울하게 저평가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가 특정 범주의 작업 전체를 오랫동안 보이지 않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조는 오늘날에도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미술관 벽에 걸린 작품에 값을 매기는 방식, 비평이 주목하는 매체와 무심하게 지나치는 매체, 누구의 작업이 ‘진지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지의 문제 — 이런 것들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알베르스의 이야기가 지금 이 시점에도 읽힐 이유가 있다면, 바로 그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평가의 기준이 실은 편견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는 것 — 그것을 알베르스의 직물은 실 한 올의 두께로 조용히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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