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니 번치가 떠난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가

박물관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단순히 자물쇠를 거는 일이 아닙니다. 어떤 박물관의 문이 닫힐 때, 그 안에 보존되어 있던 기억도 함께 어두워집니다. 지난 며칠 사이, 스미스소니언 연구소의 장관 로니 번치가 연말까지 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공식 발표는 조용했지만, 그 뒤에 쌓인 맥락은 결코 조용하지 않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끊임없는 압박, 역사 서술의 ‘백색화’를 향한 정치적 공세,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했던 한 인간의 분투. 저는 그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다가, 이 일이 단순한 시사 뉴스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歡迎받지 못한 이야기들

Lonnie Bunch (로니 번치)
출처: 위키백과 – Lonnie Bunch

미국 흑인의 역사를 중심에 놓는다는 것은, 언제나 누군가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었습니다. 로니 번치가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문화박물관(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의 창립 관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그 박물관 자체가 수십 년간 제도권의 무관심 속에 밀려나 있던 기획이었습니다. 노예제, 분리정책, 민권운동 — 이 주제들은 미국의 공식 서사 안에서 오랫동안 ‘보조적인 이야기’로 취급되거나, 아예 불편한 것으로 외면받아 왔습니다. 그 역사를 박물관이라는 가장 공식적인 형태의 기억 저장소 한복판에 세운다는 것은, 단순한 전시 기획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적 선언이었습니다.

기사에서 에드 사이먼은 헤리티지 재단의 수장 케빈 D. 로버츠를 언급합니다. 그는 2003년 텍사스 대학교에서 루이지애나의 노예제와 흑인 저항에 관한 박사논문을 성실하게 써낸 학자였습니다. 그 논문은 흑인 미국인들이 “문화적 전통, 비밀스러운 저항, 그리고 독자적인 정치 이념”을 통해 백인 우월주의에 맞섰다는 사실을 논증했습니다. 하지만 훗날 그는 바로 그 역사를 지우는 데 앞장서는 기관의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사이먼은 이를 두고 “백인 연구자가 흑인의 역사를 연구한 것은 그것을 더 잘 억압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는 냉혹한 결론을 내놓습니다. 이것이 번치가 싸워온 전선의 실제 모습입니다. 학문적 언어로 포장된 지우개질.

번치가 스미스소니언 장관직에 오른 2019년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스미스소니언의 역사 서술 방식을 “극단적 정치 행동주의”라고 공격했습니다. 연방 예산 지원을 삭감하겠다는 위협도 이어졌습니다. 기사는 번치가 이 압박에 “반복적으로 맞서 싸웠다”고 전하면서도, 그가 직접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압박이 사임 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음을 함께 기록합니다. 그 말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는, 독자 각자의 몫입니다.

왜 그 이야기는 언제나 저항을 불렀는가

Lonnie Bunch (로니 번치)
출처: 위키백과 – Lonnie Bunch (로니 번치)

역사박물관이 논쟁의 한가운데 서는 것은, 사실 낯선 일이 아닙니다. 역사는 언제나 현재의 이해관계에 의해 편집되어 왔고, 그 편집의 권한을 둘러싼 싸움은 문명만큼이나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집니다. 번치가 구축한 박물관과 그가 이끌었던 스미스소니언의 방향성은, 단순히 “흑인의 역사를 가르치자”는 선의의 프로젝트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공식 자화상에 이전까지 빠져 있던 얼굴들을 채워 넣는 작업이었습니다.

공학을 오랫동안 가르치면서 저는 설계도에서 빠진 부품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함을 낳는지 수없이 봐왔습니다. 역사의 서술도 비슷합니다. 어떤 집단의 경험이 빠진 역사는, 외관상 완성된 것처럼 보여도 내부 어딘가에 균열이 있습니다. 번치는 그 균열을 메우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특정 집단에게는 위협으로 읽혔습니다. “오해”라는 말이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오해가 아니라 의도적인 저항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저항이 겉으로는 “정치적 편향”이나 “행동주의”라는 언어를 빌렸다는 점에서, 번치의 작업은 당대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공격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AAM과 윌케닝 컨설팅의 최신 설문조사가 흥미로운 숫자를 내놓습니다. 보수 응답자들이 박물관에 매긴 신뢰도 점수가 7.3점으로, 2021년과 2025년보다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진보, 중도 할 것 없이 박물관에 대한 신뢰는 전반적으로 상승세입니다. 조사를 이끈 수지 윌케닝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박물관 콘텐츠에 대한 정치적 간섭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 숫자는 번치가 지켜내려 했던 것이 실제로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사임 이후에 남겨진 것들

Lonnie Bunch (로니 번치)
출처: 위키백과 – Lonnie Bunch (로니 번치)

재평가는 때로 당사자가 자리를 떠난 뒤에야 시작됩니다. 그것이 이 이야기의 가장 씁쓸한 대목입니다. 번치가 스미스소니언을 떠나고 나면, 그가 구축한 것들이 비로소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가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문화박물관은 그가 창립 관장으로 세운 기관입니다. 그것은 오랜 기간 제도권의 무관심 속에 존재하지 않았던 공간을, 실제로 존재하게 만든 일이었습니다. 에드 사이먼은 번치의 작업을 “훌륭한, 심지어 영웅적인”이라는 말로 평가합니다. 사임이 그 작업의 가치를 조금도 줄이지 않는다고도 덧붙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멈추게 됩니다. 영웅적이라는 수식어는 종종 과거 시제로 쓰입니다. 그 사람이 이미 물러났거나, 이미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좀처럼 그런 말을 붙이지 않습니다. 번치가 스미스소니언 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그가 받은 것은 “극단적 행동주의자”라는 딱지였습니다. 사임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야 “훌륭하고 영웅적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이 재평가의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그리고 그 패턴이 반복될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더 늦게 알아보게 됩니다.

박물관에 대한 신뢰가 올라가고 있다는 조사 결과와, 스미스소니언 장관이 정치적 압박 속에 물러난다는 사실이 같은 시간 안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이야기의 두 얼굴입니다. 사람들은 박물관을 믿고 싶어 합니다. 그 믿음을 지켜내는 일이 얼마나 소모적인 싸움인지를, 번치의 이야기는 조용하게 증언합니다.

훌륭한 일은 결국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다만 우리는 그 “결국”이 너무 늦지 않기를 바라야 합니다. 번치가 남긴 것들이 지금 우리 곁에 있는 동안, 그것을 지켜보는 눈이 충분히 많아야 한다는 것 — 그것이 오늘 이 이야기가 건네는 가장 조용한 부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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