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를 예술가로 만든 사람 — 코요 쿠오와 베니스 비엔날레가 남긴 것
베니스의 5월 아침은, 듣기로는,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시작하는 게 제일이라고 합니다. 물이 닿을 듯 가까운 골목길을 걸으며, 비엔날레 개막을 앞둔 도시는 아직 조용하지만 어딘가 팽팽한 긴장감이 공기 중에 깔려 있습니다. 그 긴장감의 한복판에, 올해는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2026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메인 전시 In Minor Keys를 기획한 큐레이터 코요 쿠오(Koyo Kouoh)입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전시의 개막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술가들과 맺어온 관계의 흔적은, 베니스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큐레이터라는 존재는 참 묘합니다. 무대에 서지 않지만 무대를 만드는 사람. 이름이 전면에 나오지 않아도, 어떤 전시는 처음 입장하는 순간부터 그 기획자의 눈길이 느껴집니다. 코요 쿠오는 바로 그런 큐레이터였다는 이야기가 미술계에 전해집니다. 카메룬 출신으로 아프리카 현대미술의 흐름을 국제 무대에 소개하는 데 오랫동안 헌신해온 인물. 그가 예술가를 대하는 방식은 단순한 ‘선발’이 아니라, 함께 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까웠다는 평이 많습니다.
관계의 무게 — 큐레이터가 예술가를 선택한다는 것

기사가 전하는 2026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풍경은 단순히 아름다운 전시회가 아닙니다. 호주 파빌리온의 칼리드 삽사비(Khaled Sabsabi)는 친이스라엘 단체의 압력으로 검열을 당했다가 다시 복원되었고, 가브리엘 골리앗(Gabrielle Goliath)의 Elegy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파빌리온에서 취소된 뒤 교회에 전시되었습니다. 다야니타 싱(Dayanita Singh)은 베니스 국가 문서보관소에서 프로젝트를 펼쳤습니다. 이 모든 사건들 뒤에는 선택이 있었고, 그 선택에는 관계가 있었습니다.
코요 쿠오가 이 전시를 기획하며 예술가들과 맺은 관계는, 기사가 말하는 것처럼 “consequential(중대한)”이라는 단어로 압축됩니다. 단순한 친분이 아니라, 서로의 작업에 개입하고 책임을 나누는 관계. 큰 전시일수록 큐레이터와 예술가의 관계는 협력이기도 하고 긴장이기도 합니다. 비평가 아루나 드수자(Aruna D’Souza)는 국가 파빌리온 소개에서 예술가가 “commissioner(파견자), curator(큐레이터)” 다음으로 나열되는 방식에 분명한 불편함을 드러냈습니다. “나는 예술가가 단순히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관료로 격하되는 이 방식이 너무 싫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코요 쿠오 같은 큐레이터가 얼마나 드문 존재인지를 반증합니다. 예술가를 ‘다음 순서’가 아니라 중심에 두는 사람.
국가 파빌리온들 중 에콰도르 파빌리온을 둘러싼 이야기는 이 관계의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원주민 공동체 예술 집단 타우나(Tawna Collective)와 작가 오스카르 산티얀(Óscar Santillán)이 함께한 이 전시는, 한쪽이 다른 쪽을 압도하지 않으면서 두 목소리가 균형을 이루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비평가 흐라그 바르타니안(Hrag Vartanian)은 이 파빌리온을 “이야기와 성찰의 오아시스”라고 불렀습니다. 그 균형은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그 공간을 설계했을 것입니다.
사후에도 남는 것 — 작품 속의 큐레이터

코요 쿠오는 자신의 전시가 열리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In Minor Keys는 베니스에서 열렸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 편집장은 기사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연대의 힘과 아름다움 앞에서 이번 비엔날레 중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전시를 기획한 사람이 그 자리에 없었는데도, 그 감동은 온전히 전달되었습니다.
이것이 좋은 큐레이터와 예술가의 관계가 남기는 흔적입니다. 공학적으로 말하자면 — 오래 설계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드는 생각이지만 — 훌륭한 구조는 설계자가 없어도 하중을 버팁니다. 코요 쿠오가 예술가들과 함께 만든 이 전시의 ‘구조’는, 그가 떠난 뒤에도 제 무게를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선 예술가들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첫 비엔날레 참가도 그 흔적 중 하나입니다. 아이메 음파네(Aimé Mpané)의 성냥개비로 만든 조각 Le Souffle는 편안히 낮잠을 자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불안한 뗏목 위를 떠도는 것처럼 보입니다. 비평가는 이 작품이 “더 새롭고 안전한 집을 찾아 표류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고 썼습니다. 코요 쿠오가 아프리카 예술가들을 국제 무대로 이끌어온 수십 년의 작업이 없었다면, 이 파빌리온이 베니스에 처음 서는 것이 이토록 당연하게 느껴졌을까요.
오늘날 우리에게 남는 질문
국제 미술계에는 여전히 논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국가 파빌리온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그것이야말로 작은 나라들의 유일한 발언권이라는 반론이 맞섭니다. 비평가 바르타니안은 국가 파빌리온 폐지론이 주로 “가장 강력한 여권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한다”고 꼬집었습니다. 구조를 없애는 것이 평등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큰 불평등을 만들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코요 쿠오의 이야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빛납니다. 그는 제도 안에 있으면서, 그 제도가 보지 못하던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데려왔습니다. 라이벌을 만들지 않고, 스승과 제자라는 수직 관계를 넘어서, 함께 언어를 발명하는 동료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 관계가 만든 전시는 그가 떠난 후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타우나 컬렉티브의 26분짜리 영상 Llaki는 식민 구조 속에서 강요된 정체성이 얼마나 깊이 가족과 관계를 변형시키는지를 다룹니다. 그러나 그 작품의 시선은 슬픔에 머물지 않습니다. 기사는 그 작품이 “상실의 슬픔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체성들이 얼마나 회복력이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고양시킨다”고 전합니다. 이것이 좋은 관계가 예술에 남기는 흔적입니다. 고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 안에서도 살아남는 힘을 함께 찾아내는 것.
좋은 관계란 결국 서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남겨두는 것이며, 그 흔적은 상대가 떠난 자리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