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원형을 찾아서
3단계: 결말내기
초단편에서 가장 쉬운 것이 착상하기, 가장 힘든 것이 살 붙이기,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결말내기다. 결말은 중요하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독자가 초단편을 보는 이유는 결말 때문이다. 다른 모든 텍스트는 결말을 위한 준비 과정에 불과할 수도 있다. 초단편의 결말은 무조건 인상적이어야 하고, 대부분은 반전이 그 역할을 맡는다. 이것은 초단편계의 사회적 약속에 가깝다. 만약 반전 없이 끝난다면? 한여름에 맥주를 시켰는데 미지근하게 나올 때와 같은 분노를 느끼게 되지 않을까.
그럼 좋은 반전은 어떻게 만드는가? 옛날 같았으면 타고난 센스가 필요하다고 편하게 말하겠지만, 이제는 생각의 우위를 점하는 일에 달렸다고 본다. 이론은 간단하다. 내가 아무리 허접한 반전을 내놓아도 독자가 예상하지 못했다면 일단 좋은 반전이다. 독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쓸 수만 있다면, 재능이고 센스고 상관없이 좋은 반전을 쓸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요즘은 생각이 범람하고 공유되는 시대라서 사람들이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창작자는 그 보편적인 평균값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5를 알 때 내가 7을 알아야만 2만큼의 변숫값이 생긴다. 이것은 시간을 투자하면 해결이 가능하기에 재능보단 노력의 영역이다. 그러니 늘 많은 것을 봐라.
내가 7을 아는 상태에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결말은, 나조차도 처음 보는 결말이다. 7을 아는 사람도 몰랐던 결말은 8을 아는 것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실제로 내가 수백 편을 연재하던 당시에도 그런 결말은 100퍼센트 성공했다. 이 최고점을 기준으로 조금씩 타협해가는 것이 결말을 쓰는 과정이다.
① 나도 처음 보는 결말이 떠올랐는가? 아니라면→② 내 상상의 범위 안에 있지만 독자가 모를 만한가? 아니라면 -> ③ 독자가 알 법도 하지만 임팩트가 있는가? 아니라면 -> ④ 의미라도 있는가? 아니라면 -> ⑤ 버려라
버리는 걸 제외하고 대략 네 가지 등급으로 나누었을 때, 내가 지금까지 발표한 초단편 900여 편의 비율을 따져보면 각각 '10%/30%/ 40%/ 20%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좋은 결말을 쓰기란 무척 어렵다.
그럼 구체적인 결말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앞서 초단편을 쓰는 과정을 착상하기, 살 붙이기, 결말내기로 나눴지만, 셋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대부분은 살을 붙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결말도 함께 떠오른다. 16부작 드라마를 14부까지 봤다면, 나
머지 2회는 큰 틀에서 예상되지 않는가? 그것과 같은 이치다.
말하자면 살을 붙이는 과정에서 나오는 첫 번째 결말이 바로 독자가 예상하는 내용이다. 독자는 정확히 내가 맨 처음 떠올린 결말을 생각하며 글을 따라온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단순하다. 내가 처음으로 떠올린 결말을 피해야 한다. 그 방법은 다양하다. 처음 생각한 결말로 끝나는 것처럼 미끼를 던져서 독자의 눈을 가리거나, 전혀 다른 이야기를 섞어서 독자의 예상을 뒤엎거나, 첫 반전 이후에 추가로 반전을 넣거나, 맥거핀으로 독자의 시선을 끄는 방법도 있다. 내용 전개상 누구나 예상 가능한 '첫 결말'을 독자가 바둑판에 둔 돌이라 생각하고, 다음 수를 끊임없이 궁리하다 보면 좋은 결말이 나온다.
초단편 결말의 목표는 카타르시스다.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순식간에 몰입하고, 결말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초단편 독서의 양상이다. 결말에서 작가가 의도한 독자의 반응을 크게 다섯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면 '소름, 감탄, 웃음, 헛웃음, 울컥'이다. 결
말을 접한 독자가 이 중 최소 한 가지 반응은 보여야지만성공한 초단편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쓴 글이 독자에게 이런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첫 번째 독자의 반응을 보면 된다. 글을 쓰면서 가장 먼저 읽는 작가 본인의 반응말이다. 내가 쓰면서도 소름이 돋고, 감탄이 나오고, 눈물이 맺힐 때가 있다. 그럼 독자도 반드시 그러하다. 개인적으로 그런 것들을 느끼지 못하고 마무리한 글은 타협했다고 생각해서 2군 취급하는 편이다. 단, 그런 느낌은 최초 한 번만 그렇고, 수정하려고 계속 만지다 보면 무덤덤해진다. 그러니 처음 쓴 문장에서 느낌이 왔다면,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기를 추천한다. 때로는 보편적인 글쓰기 문법이나 규칙에서 벗어난 연출이 글의 호흡상 더 소름 끼칠 때가 있는데, 나중에 문법에 맞춰 수정하다가 느낌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결말을 쓸 때 주의할 점이 있다. 곧바로 피드백이 이루어지는 인터넷 게시판에 연재하던 당시, 나는 댓글 창에서 독자들과 대결했다. 반전을 예상한 사람이 나오면
패배감이 밀려왔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면 희열을 느꼈다. '예상했을까? 예상하지 못했을까? 독자들과 계속 승부를 겨루다 보면 어느 순간 반칙을 쓰게 된다. 설득력과 개연성을 무시하는 뜬금포 결말 말이다. 치사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예상을 벗어나더라도 '무리수'라는 댓글이 달리면 얼굴이 뜨거워진다. 반칙패다.
무리수를 주의해야 하지만, 돌파구 또한 무리수다. 뻔한 결말만 떠오른다면 차라리 일단 무리수를 던져라. 그리고 그 무리수에 맞춰 앞 내용을 수정해라. 복선을 깔거나, 시대상이나 직업을 바꾸거나, 캐릭터를 추가하거나, 희소병을 설정하는 등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면 반칙으로도 독자와 승부를 겨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