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용기: 글쓰기에서 부끄러움을 극복하는 여정
"인식에 이르는 길 위에서 그렇게 많은 부끄러움을 극복할 수 없다면 인식의 매력은 적을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서론
'문학은 용기다'라는 명제를 처음 봤을 때 곧장 와 닿지 않았다. 문학은 언어 예술이고 용기는 굳센 기운인데 무슨 상관이 있지 했다. 꾸준히 글을 읽고 쓰면서 그 깊은 의미를 알아챘다. 좋은 글에는 금기와 위반이 있다.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드러내고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것들을 밝혀낸다. 작가의 용기에 탄복하고 작가의 용기에 전염된다.
본론
용기의 의미
어쩌면 용기란 몰락할 수 있는 용기다. 어설픈 첫 줄을 쓰는 용기, 자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용기, 진실을 직면하는 용기, 남에게 보여 주는 용기,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용기, 다시 시작하는 용기...... 도돌이표처럼 용기 구간을 왕복하는 일이 글쓰기 같다. 오죽하면 이성복 시인이 말했을까. "글쓰기는 오만한 우리를 전복시키는 거예요."
![용기 있게 글을 쓰는 모습](https://www.example.com/images/courage-writing.png)
글쓰기와 부끄러움의 총량
처음엔 나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 남들 앞에 내놓는 일이 쑥스러워 몸이 굽었다. 그래도 굽은 몸으로 꾸준히 쓰고 의견을 냈다. 안 쓰고 안 부끄러운 것보다 쓰고 부끄러운 편을 택했다. 부끄러움 총량의 법칙이 있는지, 왕창 부끄럽고 나면 한결 후련했다. 부끄러워야만 생각하므로 부끄럽기로 자처한 측면도 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아는 자기 인식이야말로 쾌감 중 으뜸임을 알았다.
![글을 쓰며 부끄러움을 극복하는 모습](https://www.example.com/images/shame-writing.png)
결론
부끄러움과 대면하는 '용기 구간'은 저마다 길이가 다를 텐데, 글쓰기 수업을 두 차례 들은 학인은 이런 후기를 남겼다. "이전수업에는 쓸 말이 없어서 애를 먹었고, 이번 수업에는 쓴 글을 줄이느라 애를 먹었다. 달라진 점은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는 것과 나를 드러내는 부끄러움이 줄었다는 것이다."